훗훗훗! 연탄 배달이 인터벌 훈련이 될 줄이야

런린이의 첫 연탄 봉사와 '선한 영향력'의 온도

by 이재민 러닝코치

2019년 겨울 혹독한 1월의 한파가 몰아치자, 펄펄 끓던 러너들의 몸도 자연스레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내가 속해 있던 '병아리 오픈채팅방'의 러닝 벙(번개 모임)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픈채팅방 특성상 고정된 모임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대회가 열릴 때나 한 번씩 얼굴을 보던 사이였으니, 겨울처럼 날씨가 험악해지면 만남이 뜸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에 반해, 내가 새로 발을 들인 인천 지역 'one 크루'의 활동은 한겨울에도 몹시 왕성했다. '인천'이라는 확고한 지역적 교집합이 있다 보니 언제든 만나기 편하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크루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단톡방에 **'연탄 봉사활동'**을 간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크루 차원에서는 벌써 두 번째인지 세 번째 진행하는 행사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시간 채우기용으로 의무적으로 했던 봉사활동 이후, 내 의지로 몸을 쓰는 자원봉사에 나서는 것은 약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처음엔 크루장님이 "일손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고 독려해서 신청한 것이었지만, 막상 내 손으로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하고 묘하게 떨려왔다.



지게를 멘 러너들의 폭주, "이건 봉사인가 훈련인가"


결전의 날, 우리가 모인 곳은 인천 선학동의 어느 산동네였다. 골목이 너무 좁고 가팔라서 차로는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곳. 1톤 트럭이 큰길가에 연탄을 부려놓으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릴레이로 연탄을 나르거나 직접 지고 날라야 했다.


우리는 옷에 검은 때가 묻지 않도록 우비로 무장했다. 하지만 얼굴 여기저기에 새까만 연탄재가 묻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서로의 꼬질꼬질해진 얼굴을 보며 우리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매서운 한파 속이었지만 골목에는 훈훈한 열기가 감돌았다.


비교적 평탄하고 가까운 집들의 배달이 끝나자, 힘 좀 쓴다는 남자 크루원들은 고지대에 위치한 먼 집들로 차출되었다. 그런데 이때, 내 곁에서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병아리 오픈채팅방에서 나를 헬스장 러닝머신 지옥으로 끌고 갔던 그 '근육맨 동생(내가 one 크루로 데려온 그 녀석)'이었다.


그 동생은 자기 몸집만 한 지게를 등에 짊어지더니, 갑자기 연탄을 싣고 언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훗! 훗! 훗! 훗!" 마치 트랙에서 전력 질주 훈련을 하듯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가파른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게 아닌가. 가만히 걸어 올라가도 다리가 후들거릴 판에, 연탄을 지고 산악 구보라니. 하지만 나 역시 지기 싫어하는 마라톤 중독자가 아니던가. 나도 질세라 지게를 둘러메고 그 녀석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훗! 훗! 훗! 훗!" 어느새 훈훈했던 연탄 배달 현장은 두 남자의 피 튀기는 인터벌 훈련장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image.png 힘들지만 사진은 웃으면
image.png 아 힘들어...
image.png 구경나온 동네 어르신 (강아지)



연탄 쌓기 지옥, 그리고 꿀맛 같은 뒤풀이


그렇게 두 번째 집의 배달이 끝나고, 대망의 마지막 배달이 시작되었다. 크루원 전원이 일렬로 길게 서서 연탄을 건네주는 인간 띠를 만들었다. 이번에 내게 주어진 임무는 창고 안에서 전달받은 연탄을 차곡차곡 **'쌓는 일'**이었다.


처음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쌓기만 하면 되니 '가장 꿀 빠는 일'인 줄 알았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밖에 늘어선 수십 명의 봉사자들이 미친 듯한 속도로 연탄을 패스해 오기 시작했다. 연탄은 끊임없이, 자비 없이 밀려 들어왔다.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춰 부서지지 않게 각을 잡아 연탄을 쌓아 올리다 보니, 나중에는 허리와 팔이 말 그대로 바스러지는 줄 알았다.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모든 배달을 마치고, 우리는 새까매진 얼굴로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는? 당연히 땀 흘린 뒤에 빠질 수 없는 **'뒤풀이(술자리)'**였다!


나는 원래 술을 엄청 좋아한다. 술자리 특유의 왁자지껄 떠들고 웃는 분위기도 사랑한다. 하지만 MBTI 극 'I(내향형)'의 소심한 성격 탓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는 본능적으로 불편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나는, 인천 'one 크루' 사람들과 하루빨리 친해지고 싶어 그 불편함을 꾹 누르고 뒤풀이 자리를 꼬박꼬박 따라다녔다.


고기를 굽고 술잔을 부딪치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달리기라는 취미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 달리기 말고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땀을 흘릴 수도 있구나.'

크루장님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던 **'러너들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온몸으로 체감한 하루였다.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모이면 정말이지 못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매일매일 러닝에 대해, 러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러닝 크루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대해 새롭게 배워가고 있었다.


image.png 고기를 먹고 크루장에 게임에 패배해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병아리들의 반란


그리고 바로 이즈음. 겨울잠에 빠져 있던 '병아리 오픈채팅방'도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며 결정되지 않던 크루의 이름과, 크루를 이끌어갈 '크루장'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힌 것이다.

과연 오합지졸 런린이들의 크루 창단은 어떻게 진행되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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