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이 교차하던 날, 하필 다리가 고장 났다
내 다리가 이상하다! 지방으로 내려가 이틀 연속 하프 마라톤을 뛰고,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술을 마신 대가는 생각보다 빠르고 기묘하게 찾아왔다. 다리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통증의 양상이 참 이상했다. '왜 걸을 땐 아프고, 정작 뛸 땐 안 아프지?' 달리기를 하며 족저근막염이나 지간신경종 같은 훈장(?)은 겪어봤지만,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었다. 콕 집어 특정 부위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설명이라도 하겠는데, 이렇게 애매하게 아프다 안 아프다를 반복하니 의사 앞에서도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속한 두 개의 크루 단톡방에 증상을 물어보았다. "저... 계단을 내려갈 때나 걸을 때 무릎 바깥쪽 옆이 아픈데요. 특히 계단 내려갈 때 진짜 아픕니다. 이거 왜 이럴까요?"
곧바로 러너들의 진단이 쏟아졌다. "아, 그거 **'장경인대염'**이네요!" 장경인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였다. 급히 인터넷을 뒤져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이나 러너들에게 아주 흔하게 찾아오는 불청객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장경인대염에 걸렸다는 고통 호소 글은 수두룩한데 '이렇게 해서 완치되었습니다'라는 속 시원한 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불치병 같은 녀석을 어찌해야 하나 싶어 인천 'one 러닝 크루' 크루장님께 조언을 구했다. "형님, 그거 강
하게 뛰면 낫습니다." 네? 아파서 절뚝거리는데 강하게 뛰라니, 이게 대체 무슨 기적의 논리란 말인가. 반면 '병아리 크루' 방에서는 **"무조건 푹 쉬어야 낫는다"**고 정반대의 처방을 내렸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뛸 때는 안 아프니 쉴 때 휴식부터 해보자'는 나름의 절충안을 내렸다.
휴식을 다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동네(인천) 사람들이 단톡방에 러닝 벙개를 쳤다. 명분은 이러했다. "저희가 달리기 끝나고 먹을 김밥을 사 갈 테니, 우리 **'김밥대장'**님 나오셔서 달리기 좀 가르쳐주세요!"
내 인스타그램 닉네임인 '김밥대장'. 나를 위해 친히 김밥을 조공(?)하겠다며 인천 청라에서 급하게 벙이 열린 것이다. 아, 이러면 나가야지! 다리가 욱신거리긴 했지만 나를 핑계 삼아 모인 자리인데 빠질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뛰기 시작하니 통증은 금세 가라앉았고, 사람들과 신나게 달린 후 꿀맛 같은 김밥을 나눠 먹었다.
세상에, 달리고 나서 먹는 김밥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우물우물 김밥을 씹으며 수다를 떠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회사 근처, 집 근처에 기가 막힌 김밥 맛집이 있다며 다음엔 자신들이 릴레이로 김밥을 포장해 오겠다고 선언했다. "와! 이게 진짜 찐 '김밥런'이네요! ㅋㅋㅋ"
사람들이 나를 핑계 삼아 김밥을 사고, 그렇게 다 같이 모여 기분 좋게 땀을 흘렸다. 회사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투명 인간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꽤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청라에서 첫 김밥런을 뛰었던 바로 그날, 3월 4일. 나는 드디어 아침에 눈을 뜨고도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다. 남은 연차를 모두 영끌해서 3월 24일 서류상 공식 퇴사일이 될 때까지 쭉 쉬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 출근길을 끝내고 나니 찝찝하면서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후련했다.
사실 이 회사는 나의 애증이 깊게 서린 곳이었다. 예전에 한 번 퇴사했다가 사장님이 "제발 다시 돌아와 달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재입사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회사를 나갈 무렵, 회사는 거의 부도 직전의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 100명 가까이 되던 직원은 20명 남짓으로 쪼그라들었고, 신작을 개발할 자금이 없어 기존 게임의 리소스를 재활용해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직원들의 월급은 반토막이 났고, 퇴사자들의 퇴직금조차 주지 못하는 끔찍한 암흑기였다.
그때 나는 클라이언트, 서버, 기획, UI 단 4명의 인력만으로 뚝딱 만들 수 있는 당구 게임을 기획했다. PT를 거쳐 개발 승인을 받아내고 불과 3개월 만에 프로토타입을 뽑아냈다. 그런데 부사장님은 유일한 기획자인 나와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기획을 마음대로 뜯어고쳤고, 그마저도 공유해주지 않아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계속 기획자를 패싱하실 거면 전 퇴사하겠습니다." 나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뼈대를 세워두고 떠났던 그 당구 게임이 시장에서 이른바 '중박'을 터뜨렸다. 밀린 퇴직금을 모두 청산하고 신작을 개발할 수 있는 든든한 자금줄이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1년 뒤, 사장님이 나를 다시 찾아와 재입사를 간곡히 권했다. 나의 복귀 조건은 단 하나, **"그 부사장님과 일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당연한 조건은 사장님 선에서 묵살되었고 부사장님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또다시 이상하고 불쾌한 상황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고, 이번의 두 번째 퇴사로 이어진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그 회사는 껍데기 판권만 유지할 뿐 자체적인 신작 개발은 꿈도 꾸지 못하는 회사가 되어버렸다. 어휴.)
2003년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해, 업계에서 '성격은 나빠도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기획자'로 불리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두 번의 지독한 뒤통수를 겪고 나니 게임 개발은 이제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좀 쉬자.' 나는 머릿속 스위치를 완전히 꺼버렸다.
지금껏 내 인생이 어떻게든 굴러왔듯, 앞으로도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당분간은 복잡한 생각일랑 접어두고 신나게 달리기나 하면서 다음 챕터를 구상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자유의 휴가가 시작되는 바로 그날부터, 하필 다리가 아파 계단조차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지독한 조화란 말인가.
다행히 퇴사 직후의 첫 주말에는 덜컥 신청해 둔 마라톤 대회가 없었다. 대신, 나이키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겸해 개최한 대규모 야외 체육 행사인 **'위대한 페스티벌'**이 열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지금껏 다녀본 모든 스포츠 브랜드 행사 중 단연코 최고라 꼽을 수 있는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계단을 벌벌 떨며 내려가는 런린이의 '위대한 페스티벌' 방문기는, 다음 화에서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