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첫 런트립, 하동의 밤과 부상의 그림자
꽃놀이 인파와 겹치며 벌어진 끔찍한 숙소 대란. 우리는 하동 바닥을 쓸려 다니듯 헤매다 기적처럼 후미진 무인 모텔 방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짐을 던져놓고 미리 점찍어두었던 맛집 '일신식당'으로 향했다. 상다리가 휘어지는 코스 요리에 술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오늘 무사히 끝마친 광주 마라톤과 꿀맛 같았던 영미오리탕, 그리고 나름 꽤 성공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이 런트립 기획을 서로 칭찬하며 하루를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의 소속 크루 중 하나인 인천 'one 크루'에서 활동하며 연이 닿았던 부산 사는 형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지금 구례로 가고있어!" 사실 단 한 번도 실물을 본 적 없는 분이었다. 예전에 인천 대회에 왔다가 우리 크루장님과 인연이 되어 가입만 해둔, 부산 사람이라 오프라인 모임에선 볼 수 없었던 분인데 이렇게 낯선 타지에서 연락이 닿으니 신기하고도 반가웠다.
우리는 식당 사장님과 다정하게 인증 사진을 찍고 "자주 놀러 오겠습니다!" 외치며 기분 좋게 식당을 나섰다. (물론 그 직후에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가 터져 다시 갈 수 없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쉬고 있는데, 부산 형님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원래는 얼굴이나 뵙고 가볍게 인사만 나눈 뒤 헤어질 요량으로 나갔다. 그런데 형님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저녁은 먹었어?" "네?! 아... 저희는 먹었는데, 형님은 아직 안 드셨어요?" 우리는 이미 먹었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렸지만, 형님이 밥을 먹으러 가신다기에 엉겁결에 그 뒤를 졸졸 따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원치 않는 '두 번째 저녁 식사' 자리가 시작되었다.
이미 배가 터질 듯 부른 상태에서 눈에 띄는 식당에 대충 들어간 터라,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우리는 전날 인천에서 내려와 찜질방에서 자고 하프 마라톤을 뛴 뒤 버스로 이곳까지 넘어온 파란만장한 무용담을 풀어놓았다. 막상 피곤한 상태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무용담을 늘어놓다 보니, '아, 우리 일정 진짜 빡세긴 빡세구나' 하는 자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불과 몇 시간 전 일신식당에서는 '정말 알찬 일정이야!'라며 자화자찬을 해놓고선, 몸이 피곤해지니 이렇게 순식간에 생각이 뒤바뀌다니. 인간이란 참 간사하다.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식사를 이어가던 중, 형님이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오늘 숙소 같이 쓰면 되나?" 나와 근육 병아리(근육맨 동생)는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찰나의 정적 후, 근육 병아리가 형님을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중간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이신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짜증 내면 어떡하냐"며 동생을 말려보았지만, 이미 테이블 위에는 싸늘한 균열이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나이 많은 형님도 불편해하고, 다짜고짜 짜증부터 내는 동생도 불편하고. 중간에 낀 나는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근육 병아리의 예민함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녀석, 당장 내일 아침에 자기 인생 '첫 풀코스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극도로 긴장하고 컨디션 관리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속으로 이해하며 넘어갔다.
결국 나는 엉거주춤 중간에 끼어 "형님, 오늘 이 동네 숙소가 아예 씨가 말랐습니다. 주무실 거면 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상황을 정리했다. 형님은 급히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다 근처 찜질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구례의 찜질방은 서울처럼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았다. 결국 형님은 굳게 닫힌 찜질방 문 앞에서 택시를 불러, 저 멀리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겨우 숙박을 해결하고 다음 날 대회장으로 오셔야 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 내내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몸은 편안한 방에 누워있었지만, 마음은 지독하게 불편한 하동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섬진강 꽃길 마라톤'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원래 2월은 벚꽃이 만개하기 전 붉은 매화가 섬진강 변을 화려하게 수놓는 시기라고 했다. 하지만 올해는 계절이 더디게 온 탓인지, 우리의 코스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처량하게 늘어서 있었다. 꽃 하나 없는 매화나무가 도열한 주로라니. '아... 어제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 사일런트 힐이더니, 오늘은 꽃 없는 꽃길 마라톤이냐.' 뭐, 자연의 섭리를 어찌하겠냐만은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래도 우리가 기획한 이 런트립의 본질은 '런(Run)'에 있으니 달려야 했다.
나와 부산 형님은 하프 코스를, 예민함의 극치를 달리던 근육 병아리는 대망의 풀코스를 뛰었다. 광주 때와는 다르게 대회 자체가 크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저 크고 넓은 섬진강을 따라 묵묵히 달렸다가 되돌아오는 정직한 코스만 기억날 뿐이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시계를 보니 기록은 1시간 43분. 어제 하프를 뛰고도 꽤 준수한 기록이었다.
풀코스를 간 근육 병아리가 돌아오려면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마사지 부스에 누워 뭉친 다리를 풀고, 지역 특산물 부스를 기웃거리고, 간식으로 제공된 비빔밥과 따끈한 어묵 국물을 공원 잔디밭에 앉아 맛있게 먹으며 근육 병아리를 기다렸다.
마침내 저 멀리 근육 병아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첫 풀코스 기록은 무려 3시간 14분. 처음 뛰는 풀코스인데도 퍼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이를 꽉 깨물고 페이스를 당기며 들어오는 모습이 꽤나 짐승처럼 멋있었다. '와... 나도 나중에 저렇게 멋지게 뛰어 들어와야지! 나도 할 수 있다, 아자 아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한 달 뒤에 있을 나의 동아 마라톤을 향한 투지를 불태웠다.
대회가 끝났으니 이제 여행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차례였다. 우리는 구례와 하동의 명물인 '재첩국'을 먹으러 미리 봐둔 식당으로 향했다. 뽀얀 재첩 정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부산 형님과도 웃으며 해어짐의 인사를 나눈 뒤 구례 터미널에서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예전 인천대공원 LSD 훈련 때 내 앞에서 발목이 오도독 돌아갔던 그 부상 당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저 인천 도착하면 같이 저녁이나 드시죠!" 약속을 잡고는 밀려오는 피로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광주 일정은 나름 괜찮았지만, 구례로 넘어오면서부터 무언가 톱니바퀴가 어긋난 것처럼 꼬여버린 여행. 인천에 도착해서도 뾰족해진 근육 병아리와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며 나의 첫 기획 런트립은 찝찝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다음 날 아침에 찾아왔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다리에 감각이 이상했다. "어...? 다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허벅지와 무릎에 찌릿한 통증이 번지더니, 급기야 계단을 걸어 내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욕심을 부려 이틀 연속 하프 마라톤을 뛴 무리한 스케줄이 기어코 화를 부른 것이다. 달릴 땐 아드레날린에 취해 모른 척했던 신체의 데미지가 하루아침에 무자비한 청구서가 되어 날아왔다.
절뚝거리며 계단 손잡이를 부여잡은 내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 이번 달 동아 마라톤, 뛸 수는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