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위대한 페스티벌'과 '빡뛰'가 부른 대참사

팀 추월런 200m 광탈, 그리고 장경인대의 역습

by 이재민 러닝코치

2019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나이키에서 초대형 오프라인 스포츠 축제인 **'위대한 페스티벌(Great Festival)'**을 개최했다. 당시 나이키는 특정 마라톤 대회를 메인 스폰서로 후원하기보다 자체적인 브랜딩 행사를 꾸준히 열어왔는데, 2019년의 이 행사는 그야말로 회사 차원에서 '각 잡고' 기획한 역대급 스케일이었다. 3일 동안 열린 이 행사는 단순한 스포츠 브랜드 프로모션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락 페스티벌' 같았다. 지금껏 내가 다녀본 수많은 오프라인 행사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로 각인되어 있을 정도다.

image.png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나이키의 새로운 슬로건!


잠실 종합운동장 야외 공간의 절반을 통째로 빌려 거대한 서커스 천막들을 세웠다. 천막 안에서는 이틀 내내 요가, 필라테스, 리듬 복싱, 트램펄린 다이어트 등 다채로운 단체 GX 프로그램이 시간대별로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또 다른 천막에는 8~90년대 감성을 완벽하게 재현한 롤러스케이트장과 미로 탈출 어트랙션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야외 프로그램도 파격적이었다. 여성들만 참여할 수 있는 5K 로즈런, 여성부 5 VS 5 풋살 토너먼트, 20명이 한 팀을 이루는 팀 추월런, 그리고 옛날 예능 <출발 드림팀>을 방불케 하는 대형 장애물 달리기 세트장까지 건설되어 있었다. 야간에는 유명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뮤직 페스티벌까지 열렸으니, 세상에 이렇게 다채롭고 화려한 스포츠 행사가 또 있었을까 싶다.



'장경인대염은 빡뛰하면 낫는다'는 기적의 논리


나는 사전에 '팀 추월런'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내 다리는 며칠 전부터 찾아온 불치병 '장경인대염'으로 인해 계단조차 제대로 내려가기 힘든 상태였다. 일찍 도착해 요가 프로그램과 나이키의 새로운 러닝화 '리액트(React)' 론칭 행사를 구경하는 동안에도 다리가 욱신거렸다. 같이 간 인천 'one 크루' 멤버들이 장애물 달리기를 하고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신나게 놀며 푸드트럭 음식을 즐길 때도, 나는 뛸까 말까를 수백 번 고민했다.


팀 추월런은 20명이 한 팀을 이뤄 트랙을 돌며, 우리 팀의 1등이 상대 팀의 꼴찌를 잡으면 이기는 무자비하고도 흥미진진한 게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들이 뒤처지는 꼴찌를 독려하며 함께 뛰는 협동심, 그리고 힘을 분배해 가며 전력 질주로 상대 팀 꼴찌를 낚아채는 지능 플레이와 압도적인 체력이 동시에 필요했다.


총 8개 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맞붙게 되었는데, 문제는 팀 배정이 '랜덤'이었다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팀을 이뤄 작전을 짰다. 우리의 작전은 심플하고 강렬했다. "시작하자마자 무조건 전력 질주해서 상대 팀 꼴찌를 초반에 잡아버립시다!"


사실 다리 통증 때문에 뛰지 않으려 했지만, 얼마 전 크루장님이 내렸던 기적의 처방전(?)이 뇌리를 스쳤다. "형님, 장경인대염 그거 빡뛰(빡세게 뛰기)하면 금방 괜찮아져요!" 그래, 까짓것 미친 척하고 한 번 전력 질주해 보자!


출발 총성이 울렸다. 나는 작전대로 미친 듯이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팀 멤버 중 전력 질주를 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혼자서 바람을 가르며 오버페이스로 내달리던 나는, 불과 200m를 뛰고 완벽하게 퍼져버렸다.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결국 우리 팀은 1회전에서 허무하게 광탈하고 말았다. 비록 200m 천하로 끝났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뛴 꽤 유쾌한 경험이었다.

image.png 병아리 러너 핸드싸인을 하며.. 출발선에 서있다!



괴물 같은 크루원들, 그리고 역습의 시작


전력 질주(빡뛰)를 할 때만 해도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 진짜 크루장님 말대로 빡뛰하니까 낫네?' 착각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숨을 고르기 무섭게,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고통이 무릎 바깥쪽을 강타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악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 앞에서 아프다는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나를 믿고 따라온 동생들에게 내 부상 때문에 불편한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꾹 참으며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그 와중에 나를 놀라게 한 건 우리 크루원들의 미친 기량이었다. 같이 간 'one 크루'의 여동생은 팀 추월런 여성부에서 무려 우승을 차지했다. (알고 보니 어릴 적 학교에서 단거리 달리기 선수로 활약했다고 한다.) 게다가 '병아리 크루'에 최근 합류한 전 축구선수 출신 멤버는 남성부 팀 추월런에서 보란 듯이 우승을 해버렸다! "와... 나 대체 지금 어떤 괴물들 사이에 껴서 운동을 하고 있는 거지?" 헛웃음이 났다.


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시간이 없어 다가올 야간 뮤직 페스티벌을 보지 못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인천으로 복귀했다. "내년에도 또 열리겠지? 그때는 끝까지 놀다 오자!"


하지만.. 2회 위대한 페스티벌은 영영열리지 않았다. (코로나..)

image.png 아쉽지만 집에 가야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다음 날까지 다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있어야만 했다. '하아... 이 다리를 대체 어째야 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의 농도는 더욱 짙어져만 갔다. 내 인생 첫 풀코스 도전인 '동아 마라톤'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 전까지 제발 기적처럼 낫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장 내일은 또 다른 릴레이 마라톤 대회의 자원봉사를 가기로 약속되어 있어, 오늘 무조건 푹 쉬어야만 했다.


[TMI 여담: 나이키 리액트의 비상] 이날 행사에서 대대적으로 공개했던 나이키의 신작 마라톤화, '나이키 에픽 리액트(React)' 쿠션 모델은 론칭과 동시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 리액트 폼의 성공을 기점으로, 당시 마라톤화 시장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던 나이키가 본격적인 약진을 시작하게 된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image.png 역대급 쿠션과 역대급 존재감 리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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