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접힌 발목, 오픈채팅방에서 다시 펴다
2017년 11월, 마지막이라고 선언했던 하프 마라톤을 끝으로 나는 정말 달리기를 멈췄다. 무려 반년 동안.
그 시기 내 삶의 키워드는 '탕진잼'이었다. 인천과 서울, 경기도를 아우르며 맛집이란 맛집은 다 찾아다녔다.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깊은 관계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밥 친구', '술 친구'들을 얕고 넓게 만나는 것이 즐거웠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단이 났다. 인천 부평에서 친구들과 거하게 한잔하고 당구를 치러 이동하던 중이었다. 들뜬 기분으로 보도블록을 내려가는데, 발을 잘못 디뎠다. 내리막이라 발 앞꿈치부터 착지 되는 순간 발목이 힘없이 좌우로 꺾였다.
"오도독." 내 몸에서 났다고 믿고 싶지 않은 끔찍하고 경쾌한 파열음이 들렸다.
보통 발목을 삐면 통증이 서서히 오거나 금방 가라앉기 마련인데, 이날은 달랐다. 순식간에 발목이 부어올랐고 통증이 찌릿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금요일 밤의 열기를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다. 미련하게도 그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기어이 당구장까지 갔다. 큐대를 잡고 서 있는데 식은땀이 났다.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도망쳤다.
다음 날, 회사에 연차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인대가 심하게 늘어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붓기가 너무 심해 결국 통깁스 신세가 되었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통깁이라니.
두 달간 깁스를 하고 풀었을 때, 내 몸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움직임이 없으니 살은 10kg이나 불어났고, 깁스를 했던 쪽 다리 근육이 다 빠져 종아리 굵기가 확연히 다른 '짝짝이'가 되어 있었다.
재활을 위해 생전 처음 '도수 치료'라는 것을 받았다. 이때 발목 재활 운동을 배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배운 재활 지식이 먼 훗날 내가 러닝 코치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생에 버릴 경험은 없다더니.)
발목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이어트가 시급해졌다.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운동들을 하나씩 복기해 봤다.
헬스: 무게 치는 것에 재미를 못 느낀다. 탈락.
요가: 짝사랑하던 선생님이 없는 요가는 앙꼬 없는 찐빵. 살 빠지는 운동도 아니다. 탈락.
다이어트 댄스: 아, 옛날에 댄스 선생님이랑 썸 탈 때나 재밌었지. 지금 그 선생님은 결혼했다. 탈락.
태보: 동작이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요새는 태보장이 다 망했다. 탈락.
재즈댄스: 두 번 듣고 포기했던 흑역사. 탈락.
스쿼시: 헬스장 먹튀 사건 이후 주변에 스쿼시장이 씨가 말랐다. 남은 곳은 비싸고 텃세가 심하다. 탈락.
결국 남은 건 하나였다. "아... 역시 살 빼는 데는 러닝인가."
다시 아파트를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전 같지 않았다. 이미 맛집 투어와 음주가무에 절여진 뇌는 달리기의 고통을 거부했다. "예전엔 이만큼 뛰었는데 지금은 왜 안 되지?"라는 비교만 하게 되고, 재미가 없었다. 동기부여가 절실했다.
혼자가 안 되면 같이 뛰면 된다. 러닝 크루를 찾아보았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가장 먼저 '휴먼레이스'가 떴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데, 카페 분위기를 보니 뭔가 너무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었다. '와, 여기 뭐지? 난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뛸 생각은 없는데...' 주눅이 들어 조용히 창을 닫았다.
대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뒤졌다. 맛집 정보를 얻으러 다니던 곳이니 러닝 방도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초보들의 러닝방]**이 있었다. 이거다 싶어 냉큼 들어갔다.
이곳은 신세계였다. '초보'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인지 분위기가 훈훈했다. 3km만 뛰어도 "대단하다!", "최고다!", "멋져요!"라며 우쭈쭈 해주는 분위기였다. 다이어트가 목표가 아니라, '오늘 하루 운동 인증'을 목표로 하니 부담도 적었다. 칭찬을 먹고 자란 고래처럼, 나는 다시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방 인원이 늘고 서로 실력이 늘자,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모임(벙)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달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피들이 모인 곳 아닌가. 달리기는 거들 뿐, 목적은 뒤풀이였다. 하지만 무분별한 음주를 막기 위해 우리만의 엄격한(?) 룰이 탄생했다.
하나, 뒤풀이는 달리기에 참여한 사람만 참석 가능하다.
둘, 술은 달린 거리 10km당 소주 1병으로 제한한다.
이 황당한 규칙은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뛰어야 했다. 많이 마시고 싶으면? 더 많이 뛰어야 했다. "오늘 나는 10km를 뛰고, 당당하게 소주 한 병을 마시리라!"
그렇게 나는 오픈채팅방 낯선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고, 술잔을 부딪치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내 달리기 인생, 그 화려한 2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