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랜차이즈 슈퍼바이저의 딜레마
“안녕하세요 슈퍼바이저님^^ㅇㅇ점 이에요 오늘 본사에서 우편물이 왔네요
제가 계약서상에 있는 중요한 약속중에 하나를 어겼네요
올해로 6년차 ㅇㅇ를 운영하고 있는 점주로서 창피하고 죄송하네요 코로나이후로 가게사정이 많이 힘들었어요 거의 2년동안 통장 잔고 20~30을 벗어나질 못했어요 계속 마이너스가 나는 상황에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가 재료를 사고 임대료를 내며 지낸게 2년 가까이 되네요
제가 ㅇㅇ를 사입했던 이유는 통장잔고가 20~30만원 에서 벗어나기 힘들면서 한번 ㅇㅇ를 주문하면 10만원정도씩 주문을 해야하니깐 잔고의 절반으로 ㅇㅇ를 주문하고 나면 다음 날이 불안했습니다. 아이도 있고하니 급한일이 혹시 생길까봐 몇만원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그래서 하루 하루 조금씩 사고싶은 나머지 그렇게 됐던거 같아요,,
한번은 햄이 떨어져 주문하고싶은데 그것마저 큰돈이라 며칠은 발주하지 못해서 판매를 못했던 적도 있네요^^;;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거 같아요 당연히 제가 실수를 한게 맞구요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해야지요, 제가 슈퍼바이저님 너무 믿고 도와주려고 했던 마음도 알고 그래서 다른분한테는 말 못하고 슈퍼바이저님 한테만 그동안 사정을 말씀드려요^^
그 우편물로 인해 머리가 번뜩,정신 차린거 같아요^^ 제가 ㅇㅇ를 운영하는 날까지는 처음마음 그대로 해볼게요 그럼 편안한맘 보내시구요..다음에 가게한번 들리면 우리 커피한잔해요^^”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녀의 사정은 너무 뻔했다. 차라리 다른 이유가 있었으면 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사입하다가 적발된 다른 지점들처럼 큰소리라도 쳤으면 했다. 본사가 공급하는 식자재 품질을 걸고넘어졌다면 나도 속시원히 맞대응으로 말싸움을 했을 텐데 말이다. 내용증명이 발송된 다음날 밤, 폭풍이 지나간 듯한 고요한 밤에 날아든 담담한 그녀의 고백문자는 잔잔했던 내 마음에 돌을 던졌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우리 회사의 수익 구조는 가맹점주로 받는 로열티가 아니다. 필수 식자재를 납품하는 도소매업이 회사의 주 수입원이다. 때문에 다른 식자재를 사용하다가 적발이 되는 지점에는 가차 없이 내용증명이 발송된다. 사실 이 내용 증명이라는 것이 당장의 법적 효력이나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잔잔했던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 한 점주의 문자처럼 점주 본인들의 안일했던 사업 마인드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에피소드가 될 수 있다. 또한 향후 재계약 시 이 내용 증명을 근거 삼아 훨씬 엄격한 계약조건을 본사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3년간 근무해오면서 이번처럼 대량으로 내용증명이 발송된 적은 없었다. 그 간 두 번의 내용 증명이 보내지는 걸 보았다. 내가 근무하는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식자재를 다른 곳에서 사다 쓴 지점이 있었다. 회유하고 회유하던 끝에 두 번의 내용증명이 결국 발송되었다. 이 전 사례와는 다르게 이번의 강력한 조치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임원급에서 결정된 파격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담당 슈퍼바이저들은 어느 정도 내용증명 발송에 대한 것을 지점에 귀띔해주어 사전에 껄끄러운 상황을 차단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중대 시기를 넘어오며 상황은 달라졌다. 식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치솟으며 본사는 본사대로 마진에 예민해져 있었고, 가맹점은 가맹점 대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저품질의 대체 식자재를 사입해 쓰는 사례가 늘어가게 된 것이다.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어느 매장에서든 균일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가맹점주의 식자재 사입은 퀄리티와 맛적인 부분에서도 예민하게 다루어야 하는 사안이다. 회사는 회사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이번 내용증명 발송은 회사의 입장에서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본사와 점주의 사이에 있는 슈퍼바이저로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충은 한층 깊어졌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이번에 내용 증명을 발송한 15개 지점의 15개 사연 중 유독 위의 지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점주는 매출과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 영업시간을 늘려야 하지만 영업시간을 늘리게 되면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돌볼 수 없다. 육아를 포기하게 되면 남편 없이 홀로 장사를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지독한 딜레마다. 다시 한번 나의 무력함에 고민이 깊어진다.
점주의 장사 마인드를 깨치기 위해 보낸 내용증명이 나의 직무마인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의 연결고리가 내 직무이다. 온도차가 큰 그 두사이를 어떻게 매끄럽게 붙잡아 메야하는 것인가. 내 고향인 포항에는 형산강이라는 큰 강이 흐른다. 그 형산강에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하구가 존재하는데 어느 한쪽의 물 흐름이 세다면 큰 소용돌이나 거센 물결이 발생한다. 이번 내용증명이 내 안에도 거센 물결을 일으켰다. 바닷물과 강물이 잘 섞이지 않으면 산소가 차단이 되어 물속의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문득 내 직무 무게에 대한 고민으로 잔잔하다가도 매서운 감정이 휘몰아치던 복잡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