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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Jun 01. 2022

일의 기쁨과 슬픔

: 도비의 자가진단

매주 화요일이 두렵다. 2주째 새벽 4시가 돼서야 퇴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시간대 퇴근은 그냥 환복하러 집에 잠깐 다녀오는 수준이다. 대단한 발표를 맡게 된 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디테일한 내용을 업데이트하며 회의자료를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이 회의 준비를 위해서 화요일은 다른 업무를 제쳐두고 종일 해당 업무에만 매달려도 된다. 그러나 나는 나의 본업인 매장관리에도 충실하고 싶었다. 매장 방문과 미팅을 그대로 진행하고 나면 회의 준비 자체가 늦을 수밖에 없다. 모두 내 의지에 달린 일이지만 나는 이 모든 걸 해내고 싶은 마음에 어김없이 다음 주도, 그다음 주의 화요일도 늦은 퇴근을 할 걸 안다. 나를 뻔히 아는 나는 요즘 화요일이 몹시도 두렵다.

내가 이렇게 밤새워서 근무하는 것은 고과 때문도, 인센티브 때문도, 더욱이 흡족할 정도의 연봉을 받아서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충성할 뿐이다. 내 신념에 반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밤을 새워서라도 완벽한 자료를 내놓고 싶고 좀 더 다듬어진 성과를 내놓고 싶다. 자기만족인 셈이다.

이런 나를 보고 미련하다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사람도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업무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원했던 바람직한 현상이다. 어느 편이거나 자타 공인 워커홀릭이라는 의미니깐 말이다. 일 하나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다. 그러나 돈도 명예도 아닌 오로지 나의 신념을 위해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가끔 나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신념이 그토록 나를 일밖에 모르는 도비처럼 보이게 만들었을까.

지난주 나는 모 보험사 상무와 미팅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슈퍼바이저와 보험사 임원의 미팅은 생소한 조합이다. 영업의 신이라 불리던 그와의 미팅은 우리 회사의 모 고문의 인맥을 통했기에 가능했다. 보험설계사라는 매우 유동적이고 방대한 툴을 지닌 그에게 우리 브랜드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신규 지점 확대에 그 툴을 좀 빌려주십사 하는 일종 부탁의 자리였던 셈이다.

저는 제가 써보고 좋았던 제품들은 어울리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걸 즐깁니다. 그런 제 성향이 지금의 슈퍼바이저라는 직무랑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 일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나는 한참이나 겸손해야 했으며, 나를 낮춰야 할 그 자리에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직무이기에 즐기면서 일한다는 사실을 대뜸 밝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열정적인 인간이 관리하기에 매장을 오픈하는 점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브랜드라는 걸 피력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 미팅에서 본의 아니게 회사가 아닌 나를 드러내 버렸다. 망했다. 이 미팅은 망한 것이다. 이 악물고 수습하고자 다급하게 아무 질문이나 던졌다. 영업의 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영업 비법을 묻는 내게 그 상무는 말했다.

본인이 이미 해답을 갖고 있으신 거 같은데요? 본인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이 납니다. 그 빛이 사람들을 매료시킬 거예요.

이쯤에서 MBTI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나는 ENTP와 ENFP의 경계에 있는 인간으로서 어쨌거나 좋아하는 것에만 지대한 관심을 두는 성향을 지녔다. 그 때문에 애초의 직무 선택지에 내가 하기 싫어하는 업무는 미포함인 셈이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지랖 넓게 추천하는 걸 즐기는 이 성미도 결국 내 취향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나’를 위한 행위이다.

그렇다고 나의 만족만이 오롯이 나를 여기까지 멱살잡이로 끌고 온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2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내게도 역시 못난 마음과 못난 구석은 있다. 모두가 그렇듯이 나도 감추고 살아온 콤플렉스가 하나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의 아웃핏에 대한 불만족이다. 외모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은 불만족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빼어나지 못한 내 외모가 무엇을 하든 간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늘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나 예쁘지 않아. 하지만 나만의 매력은 충분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마인드로 바뀌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외모가 자격지심으로 발현되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이런 내 콤플렉스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발전했다. 이쁜 구석도 없는 내가 인정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무기는 외모가 빼어난 친구들이 쉽게 간과하는 브레인과 능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쁜데 똑똑하고 능력까지 있는 자들 앞에서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지만 적어도 업무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자산이었다.

단순 내 업무뿐만이 아니라 회사 내에서의 자잘한 일이나 팀워크로 일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하거나 팀워크로 어떤 업무를 배분이 필요한 순간에는 제일 먼저 가장 어렵고 궂은 파트를 도맡았다. 혹여나 나올 뒷말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쁘지도 않은 게 일도 더럽게 안 하네’ 혹은 ‘여자 직원이라고 뽑아 놨더니 이쁜 맛도 없고, 힘든 일도 안 하네. 그럼 그렇지.’와 같은 소리는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20대 시절의 못난 마음이 완연히 뿌리 뽑히지 못한 탓 이리. 아직까지도 맹목적으로 일에만 매진할 때가 많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은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그중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대목을 잠깐 소개해보자면 ‘나의 쓰임’이다. 오은영 박사도 아동의 심리를 파악하면서 ‘자기 효용성’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고는 하는데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는 나의 쓰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외적인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에 일이라는 장치를 통해 나의 가치와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종종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나 자신을 더욱 작게 만든다는 표현을 쓴다. 이건 자존감의 높낮이 문제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세상의 기준에 나의 아웃핏이 충족되지 않아서다. 각종 지표의 평균치를 세상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맞추려면 다른 부분을 높여야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는 인간이 될 수 있다.

남을 신경 쓰지 않는 MBTI 유형을 지녔으면서 아이러니하게 세상의 기준을  신경 쓰고 있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신경 쓰지 않지만 ‘ 너무 중요한 ‘에게, 끼쳐지는 외부적 영향에 예민해지는 탓일까. 세상의 평균치에 맞지 않는 인간은 소외되기 일쑤다.  소외가 나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도록 두고 싶지 않아 세상을 어쩔  없이 신경 쓰게 된다. 공교롭게  만족과 세상의 기준,   가지의 교집합이 ‘지금 하는  이다. 일거양득이다. ‘현재의  직무’,   가지에만 몰두하면 두루 만족하게   있다.  얼마나 효율적인가. 오늘도 어김없이, 지방선거일 전날이지만 야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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