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향기
작디작은 우리 동네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요즘이다. 포항에서도 메인 상권을 벗어난 콩알 같은 우리 동네는 크게 주목받을 일이 없었다. 해병대 1사단이 있는 게 전부인지라 연예인이 입대하면 그걸로 언론에 이름을 좀 들이밀곤 했다. 이번엔 대통령도 왔다 갔단다.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은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태풍으로 마당에 세워둔 차들과 집이 침수된 이들이다. 뉴스에 나온 지하 주차장의 희생자들은 분명 건너 건너의 그리고 누구의 누구일 것이라며 동네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만큼 모두가 아는 사람들뿐인 작은 동네에서 태풍 힌남노는 엄청난 일을 몰고 왔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마다 구석구석 흙냄새가 피어났다. 자욱이 피어나는 길가의 먼지만큼이나 동네 어디를 가도 매큼한 흙냄새가 따라다녔다. 다행히 큰 피해 없는 우리 집에서도 수도꼭지를 틀면 수마의 향기가 폴폴 올라왔다. 뿌옇게 나오는 수돗물의 색깔마저 서글픈 명절이었다. 이 정도면 우리 동네의 올해 추석은 아주 없는 것이었다. 엄마와 나란히 산책하며 없어진 일상을 찾았지만 없었다. 물에 쓸려간 냉천의 울타리도 한 블록 아래의 단골 세탁소도, 애기 때 부터 다니던 오천 시장의 핫도그 집도 그리고 큰 대형마트도 모두 없는 것이 되었다. 형산강변을 밝히던 포스코의 불빛도 없다. 고향 집이 있는 내 동네는 그렇게 태풍을 피해 가지 못한 동네로 떠들썩하게 이름을 날리는 중이다.
냄새라는 것은 좀체 숨기기가 힘들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은 운전기사, 가정부, 누나의 과외 선생과 본인의 미술 선생님 모두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들이 모두 식구인 것을 모르는 아이에게도 숨길 수 없는 것이 빈곤을 상징하는 반지하의 냄새였다. 아마 습하고 퀴퀴한 곰팡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보이는 것을 꾸며대도 보이지 않는 냄새는 좋던, 나쁘던 숨기기가 굉장히 힘든 까닭에 깨끗이 게워진 동네 골목에선 여전히 상처의 냄새가 짙게 진동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 때문인지 좀체 표정을 밝게 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엄마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냄새’
19살 때부터 혼자 살아온 내가 정의한 향이다. 물론 내가 가족의 천대를 받고 자랐다거나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원한 것은 절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본가와 다니던 학교의 거리가 멀었던 탓에 자취를 조금 일찍 시작하였는데 이 때문에 스스로 빨래와 주변 정리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빨래하는 요령이 없어 제대로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나가기도 했다. 그런 내 자신과 집에서 통학하는 친구의 차이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에 사는 가족들과 다송이네의 차이였을 것이다. 피존 향이 뽀송하게 피어나는 친구를 보며 늘 농담삼아 엄마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냄새 같다고 말하곤 했다. 나의 외로움에서 피어나는 향과 가족의 손을 타고 생활하는 친구 사이의 부러움이 자아낸 웃픈 농담이었다.
그 탓인지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치킨집을 운영했던 엄마 손을 잡고 새벽녘 택시를 타면 치킨을 먹고 왔냐는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외로운 아이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고단함과 외로움은 언제쯤 배어 나오지 않을지 늘 궁금했다.
엊그제 만난 친구가 보자마자 내게 서 좋은 향이 난다고 했다. 좋은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온 삶이 헛되지 않았다. 아니면 내 속의 고단함이 이제는 옅어졌나 보다. 새로 산 향수로 나의 인생이 어느 정도 치장이 되는 걸 보니 정말 살 만 해졌나 보다. 내 내면도 단단해져 고단함을 밖으로 풍기지 않는 경지에 이른 거일 수도 있겠다. 여전히 곳곳에서 흙냄새가 피어오르는 내 고향도 풀냄새와 바닷냄새가 다시 그 자리를 단단하게 채웠으면 좋겠다. 사라진 것들의 향기도 흙냄새를 어서 지워 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