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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Dec 14. 2022

#오픈런

게시물 6.9만개


2주 전 주말이었다. 명동을 다녀왔다. 꽤 괜찮은 카페가 있다는 말에 간 것이다. 유럽의 중세시대 건축물을 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기분을 낼 수 있단다. 이 무렵 내 주변의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막 다녀오거나 가려던 참이었기에 나 역시도 그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사실 나의 내면으로부터의 오롯한 갈증인지 그저 부러움에서 파생된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꽤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암스테르담이나 그 비스무리한 유럽의 감성이 그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모를 감정과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명동성당 맞은편의 카페를 찾았다.


<몰또 에스프레소>. 저 멀리 입간판이 보였다. 그 뒤로 몇 번이나 굽이쳐진 줄도 함께 말이다. 너무 여유를 부렸던 탓일까. 고개를 들어 3층에 있다는 그 매장을 보니 난간에도 이미 기 수십이 버글버글 했다. 네댓 겹으로 겹쳐진 줄을 얼핏 눈으로 헤쳐 풀어보아도 가게가 마감하는 시간에도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느즈막한 오후에 찾은 그 카페에는 결국 발도 못 들였다.


요즘 어딜 가든 오픈런이다. <몰또 에스프레소> 대신 찾은 명동성당의 빵집도 마찬가지. 생딸기 케이크가 무척이나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 케이크 역시 애저녁에 품절이란다. 아쉬운 대로 사려던 생딸기 타르트도 내 앞사람이 사간 게 마지막이었다. 이 날 뿐만이 아니다. 좀 괜찮거나 마음에 드는 식당은 오픈런을 하거나 장시간의 웨이팅을 담보로 잡아야지만 입장의 영광을 거머쥘 수 있다.


압구정의 모 베이글 집에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난 적도 있다. 8시가 오픈인 그 집을 7시가 좀 되지 않은 이른 아침에 도착했는데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뒤로는 100명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스개 소리로 하는 농담처럼 내 돈도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게 요즘이다.


Take my money!!



왜 오픈런이어야만 하는가(여기서 말하는 오픈런에는 웨이팅도 포함되어 있다.). 맛집을 좋아하지만 과연 이만한 가치가 있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쉽게 오픈런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오픈런이 아니면 먹을만한 식당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의 먹을만한 식당이라는 기준은 평소에 먹지 않는 특별한 음식에 투자를 하고 음식 맛뿐 아니라 경험도 함께 득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로도 오롯이 오픈런에 대한 열광이 설명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먹을만한 식당이라는 기준도 각자가 다르다. 정말, 왜 오픈런에 우리는 집착을 하는 가.


목표 달성에 대한 성취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여정 자체가 쉽지 않은 시대이다. 취업뿐만 아니라 내 소유인 자가나 자차 등을 보유하거나 재산을 불리기도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절망이 학습되는 세상이나 그것을 해결할 만한 방안도 똑 부러지게 나온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오픈런은 기준이 명확하다. 단순하게 일찍 나와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쓰고 고되지만 기다리기만 하면 목표물을 살 수 있다. 학습한 절망 속에서 한줄기의 성취감은 오픈런에 중독될 만한 충분한 이유다.


확실한 보상 역시 오픈런을 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앞서 말한 성취감의 연장선상이다. 무언가를 학습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늘 계단식 성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지난한 과정 없이 오픈런은 바로 성과가 눈에 보인다. 사면 그만 인 것이다. 사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성과이다. 내면적인 성과 같은 것은 남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픈런의 결과는 여운은 짧더라도 당장 남들에게 내세워 자랑하기도 좋다. 단번에 가시가 좋은 오픈런은 잠시나마 나를 우쭐함으로 포장해준다.


명품 브랜드의 오픈런에서 용어는 파생되었으나 오픈런의 역사는 그 보다 더 길고 찬란하다. 선두에 서서 줄만 선다면 결과를 성취할 수 있는 게 어디 샤넬백부터 시작되었겠는가. 마트 전단지에서 흔하게 보던 <선착순, 한정>이라는 말이 그저 현란한 워딩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 워딩들은 늘 나의 심장을 두근 대게 한다. 꼭 사야만 할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시간을 화폐 삼아 쉽게 성취감을 산다.


오픈런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유독 우리는 소비지향적인 해결책에 보수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굳이 저렇게 해서 사야만 하는지의 잣대를 가지고 오픈런에 합류하는 사람을 비난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성취감을 얻는 또 다른 방법인 것이다. 이걸 금융 치료라고도 부르는 요즘, 쉬운 성취감이라도 누군가를 빛내주는 방법이라면 오픈런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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