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색, 뉴욕-문화 예술 편
얼마 전 다녀온 가고시안 갤러리 제프쿤스 전입니다. 가고시안은 뉴욕을 대표하는 갤러리 중 하나죠. 첼시에만 두 군데가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열린 중국 작가 쩡판즈 오프닝에 다녀온데 이어 첼시의 또 다른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리는 제프쿤스 전에도 다녀왔습니다.
푸른색의 게이징(바라보는) 볼을 세계적 명화(새롭게 재현한) 위에 두고 다양한 방식의 재해석을 꾀한 제프 쿤스. 예술의 뿌리를 찾는 자신의 dna를 상징하기도 하고 <gazing ball> 이란 작품전 이름처럼 관객을, 혹은 제프 쿤스 자신을 작품 속에 흡수시켜 그림 속에 넣어버리기도 합니다. 제프 쿤스 자신을 세계적인 화가 대열에 놓는 자신감의 상징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또 구형이 그렇듯 반사되는 다른 작품의 형태를 왜곡하고 reinterpret하기도 합니다. 쿤스 스스로도 이를 뒤샹(현대개념미술의 시대를 연 작가)적인 해석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휘트니 회고전에서 이탈리아 조각들 어깨 가슴 팔 다리 등에 푸른 볼을 놓았다면 이번엔 거의 비슷한 눈높이에 볼을 두고 관객을 좀더 끌어들이는 듯, 이들말로 인게이징(engaging)하는듯합니다. 물론 그의 이러한 시도를 보면서 명작에 대한 웬 애들 장난적인 도발이냐며 엄중하게 꾸짖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
말하자면, 보는 이는 저 푸른 공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면서 풀밭 위의 식사를 함께 즐기는 '참여자'로 다가서기도 합니다. 관람자이자 참여자가 되는 것이죠.
오늘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사설이 길었는데요.
제프쿤스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통해 어쩌면, '푸른 볼'이라는 단순한 사물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자아내고, 기존 작품을 다각도로 바라보게 하는 시도를 했다면, 어제 들은 이야기는 뭐랄까요. 대중성을 기반으로 독특함을 확보하기 위해 '덧칠'하는 방식은 어쩌면 비슷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 반대의 예술적 심미안을 갖게 한달까요...제프쿤스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일부 엇갈리는 면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갖다붙이는게 전제부터 잘못된 것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볼 법 해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요즘 들어 영화계 종사하는 분들을 몇 번 마주할 일 있어 듣게 된 이야기 입니다. 바로 1000만 관객을 모으는 한국 영화의 힘...에 관한 내용인데요. 한국의 영화사랑과, 콘텐츠 파워는 이미 익히 잘 알려져 있죠. 100%인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수 할리우드 블록버스트가 '빵빵' 터져주는 나라이기도 하고, (시차도 있지만) 덕분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전세계 최초 개봉'이란 타이틀이 붙어나오는 일이 허다합니다. 예술/인디 영화도 한국을 통해 날개 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원스'가 그것인데요.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죠. 이후 나온 '비긴 어게인'은 우리나라에서만 350만명 가까이 관객을 모으며 미국 관객수를 제치는 위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전세계를 다녀도 한국만큼 이렇게 콘텐츠 제작에 능하고, 또 한류 드라마의 성공에서도 보듯, 전세계에 통할 만한 감성의 콘텐츠를 제작할 능력이 충분히 되는 곳을 찾기 쉽지 않아보입니다. 세계의 돈이 모이는 자본의 산실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감성을 뒤흔드는 콘텐츠의 힘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파워풀한 건지 깨닫습니다. '스크린 쿼터제'로 영화인들이 시위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해외 자본이 더 많은 개봉관 확보를 위해 매달려야 할 것같은 분위기를 풍기니 참, 그야말로 참...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 같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감독님들이 배화출되는 것도 이 작은 나라가 가지는 거대한 능력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어쩌면 아직은 2%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 전 선댄스 영화제를 다녀왔는데, 콜럼비아 같은 남미 영화의 급부상이나 이란, 레바논 등 중동 지역 영화의 강세가 눈에 띕니다.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인 22세 신인 감독의 재기 발랄하고 풋풋하면서도 굉장히 수려하게 화
면을 이끌어가는 세련된 작법도 눈에 띄고요. 백가지 시선을 담아내는 그들의 시도 하나하나가 모여 다양성을 만들고, 이는 또 그 속에서 움트는 공감을 끌어옵니다.
여기서 들은 한마디. '된장을 발라라'.
무슨 얘기냐고요? 한국적인 정서, 한국에 통하는 내용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취하느 일종의 '조미료 비법'이라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와 비슷한 틀을 지녔더라도 전개 내용이나 대사들이 '빵빵' 터지면 그 자체로 '유니크'함을 얻게 되듯, 가끔은 조폭스러움도 넣고, 당시 유행하는 웃음 유발 코드도 더하고, 요즘말로 일종의 '병맛 개그'도 투여하고, 입에 착착 붙는 사투리로 찰진 혹은 쫄깃함도 가미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 말로 '된장 바르기'라고 하네요. 시나리오나 촬영본을 보다 뭔가 '약하다' 싶을 때 마치 MSG를 뿌리듯 살짝, 혹은 찌인하게 덮는 건데요. 어제 만난 영화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통할 때 분명 있다. 그 덕분에 700만 영화가 800만이 되고, 800만 영화가 900만 1000만이 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러더라. 영화를 만들려면, 그러니까 통하는 영화를 만들려면 지방 어디의 동네 작은 회사 경리의 마음을 얻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구석 구석을 터치하고 그 세대, 혹은 그 지역에 맞는 감성을 툭툭 건드려줄 수 있을 만큼의 통찰력과 관찰력 센스 등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고 그만큼 대중성 얻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그 반대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그렇게 덧칠하고 즉, '된장을 바르면서' 곳곳에 웃음유발요소를 넣을 순 있지만, 그 덕분에 장면장면이 늘어지고, 초점을 벗어날 때도 있다는 것이죠. 한곳을 향해 영화는 쭈욱 달려가고 있는데, 중간에 물도 마셔주고,옆동네 이장 아저씨 말도 들어주고, 그 앞가게 아줌마 물건도 사주고 하면서 가다보면 길을 가긴 가는 건데 어느 덧 해는 뉘엿뉘엿. 이런다는 설명입니다.
국내용으로야 훌륭하죠. 그 숫자가 어디 그냥 얻어지는 숫자입니까. 그렇게 된장을 발라도 안되는 영화가 있는데, 거기서 얻어낸 보석같은 작품들은 분명 된장만 발라서 다 되는 건 아니라는 방증도 됩니다.(관계 없는 얘기긴 하지만 진정한 깊은 맛을 내는 된장은 그 어떤 산해 진미 못지 않게 그윽한 풍미를 자아낸다 생각합니다. 된장도 된장 나름인거죠.) 문제는 그러한 '정서'에 있는데요. 국내선 그렇게 천만 관객몰이를 해도 해외에 통하는 작품이냐.. 라고 바로 바꿔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어제 만난 영화 관계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해외 영화의 저변에 있는 정서를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당시의 교감을 '실기'한 스타워즈가 대표적인 사례죠) 역으로 우리의 그 코드를 이해 시키거나 소통하기엔 교감이 안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국내용' '해외용'이 차이를 보인다는 해석입니다.
당장 어디가 옳다고 손을 들어주는 건 잠시 거리를 두려 합니다. 일종의 판단 유보랄까요. 읽는 이들 각자의 의견에 맡기겠습니다. 그래도 '된장을 발라라'는 조언(!)은 나름 참 신선하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