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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쌉쌀 Mar 14. 2024

나는 내가 참 가엽다

그래, 그러니 내가 날 사랑해야지

나는 내가 참 가엽다.

어릴 땐, 너무 무서운 아빠엄마 앞에서 내 목소리 한 번 내 보지를 못했다. 내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못했던 것 같다.

"이거 왜 이랬어?!" 하는 호통에, 내가 한 게 분명 아닌데도 "내가 그런 게 아닌……." 말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어디서 말대꾸야?" 하며 더 큰 호통 혹은 폭력이 이어졌으니. 내가 작은 심장으로 살아가려면 그냥 혼나는 게 더 편했다.

아빠가 물건을 던지고 엄마를 때리면 나는 언니랑 동생이랑 같이 방에 숨거나, 미처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싸움이 커지면 식탁 밑에라도 숨어서 다 같이 숨죽이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웅크리고 있었다. 울 수도 없었다. 울음소리가 나면 아빠가 더 화가 나니까.

노래 <가을 아침>을 들으면,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 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이라던데, 나는 일요일 아침 엄마의 칼질하는 도마소리에 숨이 막혔고 아빠의 발소리에 심장이 조였다. '내가 또 눈을 떴구나. 오늘은 학교에도 못 가는데, 방문을 나서면 아빠 엄마가 있구나.' 가슴이 답답했다.

사랑은 모르지만 누가 날 좋아한다는 고백에 설레던 중학생 때,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갔다가 나 좋다던 오빠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방에 들어온 아빠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 배신감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선지, 아무 기척 없이 나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날 의자에서 일으켰다. 난 그런 설렘도 있으면 안 되었다.

고등학교 때 사귄 남자친구는,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나에 대한 집착으로 보상해 갔다. 그래서 삐삐에 1분 안에 답을 못해도, 부모님이 나가지 말라고 해서 못 만나도, 다음번 만날 때 나를 때렸다. 손 발 가리지 않고 뭐로든지. 그만 만나자고 하면 너희 부모님을 가만 두지 않겠다, 네 동생을 가만 두지 않겠다 협박하며 입막음을 했다. 헤어짐은 나의 선택이 될 수가 없었다.

대학 때,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했을 때. 그날도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갔다가, 머리 식힐 겸 남자친구가 장 보는 걸 거들러 마트에 갔다. 장 봐다가 남자친구가 동기들과 함께 사는 자취방에 넣어두고 다시 도서관에 갈 요량이었는데, 우연히 마트에서 마주친 아빠는 그 넓은 마트가 떠나가라 호통을 치셨다. 난 공부하다가 바람을 쐬어서도 안 됐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리면서 이제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시어머니가 날 점점 더 움츠리게 만들었고, 남편은 마음으로 나를 버렸다. 돈을 주고 여자를 샀다. 나는 버림받았다. 내가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인생이 아니다. 내가 쌓은 성인데 무너뜨리기도 싫다. 무너져가는 성을 붙잡고 있자니 내 마음이 무너진다.


내 생각, 내 기분, 내 의지, 내 결정.

내 인생엔 늘 소용이 없었다.

내가 참 딱하다.

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를, 토닥여주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함께 울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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