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아가
넌 아직 내 마음속에 살아있단다 ♡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다가 산부인과 에피소드가 나오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왈칵, 커피를 마시다가도 울컥, 울 때가 많았다.
지금은 보물 같은 두 딸과 살고 있지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처음 품었던 아기도 살아있다.
결혼 날짜를 꽤 멀리 잡아놓고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고 천천히 결혼 준비를 했었는데, 그 사이에 아이가 생겨버렸다. 식만 올리면 되는, 양가에서는 이미 부부였던 때였는데도 덜컥 겁이 났다. 이 아이가 부담된다고 하면 어쩌지? 아직은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이 일을 어떻게 알리지? 혼자서 걱정하고 애태웠지만 남편에게 얘기 했더니 뭘 어떻게 하냐고, 걱정 말라고 날 달래고 시댁에 이야기를 했고, 친정 부모님도 많이 놀라긴 하셨지만 축하해 주셨다.
결혼식 때 임신 16주. 의사가 비행기를 타도 된다고 해서 태국으로의 신혼여행을 진행했다. 최대한 아기가 힘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비행기에서도 내내 토하고, 여행지에서 향신료에 입덧이 더 심해져 잘 먹지도 못했지만 틈틈이 쉬어줬고 행복하게 지내다 왔다.
딱 20주 되던 정기검진 날, 이모 가족이 신혼집 구경을 오시기로 돼 있어서 슬리퍼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후딱 병원에 갔다가 장을 보고 음식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초음파실 공기가 영 이상했다.
내 배를 초음파로 보다가 고개를 갸웃. 다시 보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물어도 고개만 갸웃. 갑자기 어디론가 인터폰을 하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담당 의사가 오고, 초음파를 보더니 의사도 똑같이 고개를 갸웃. 난 너무 무서운데,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무슨 일이에요? 뭐가 잘못됐나요?" 다시 물으니 의사가 입을 뗐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큰 병원으로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지난번 진료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나는 아프지도 않고 아무런 증상도 없는데, 아기를 포기해야 될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그땐 속초에 살 때였는데, 신혼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다녔던 여성전문병원에 전화를 했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바로 담당 의사를 연결해 주었고, 고맙게도 의사는 몇 시가 되더라도 기다릴테니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이모에게 연락해 약속을 취소하고, 그 대충 입은 옷차림 그대로 바로 수원으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 내 뱃속의 아기는 나 잘 살아있다는 듯 내 배를 뻥뻥 찼다. 그래, 말이 돼? 우리 아기 힘들테니 밥 먹자. 휴게소에서 든든하게 밥을 먹고나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이렇게 잘 노는데 말이 안 되지.
병원에 다다를 즈음, 담당 의사의 연락이 왔다. 긴급 산모가 생겨 잠시 다녀와야 하니, 다른 의사에게 먼저 보이라고, 정밀 초음파를 전공한 분이니 잘 봐주실 거라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바로 정밀 초음파실로 안내해 주었고, 정밀 초음파 전문가가 날 진료했다. 아, 아까 맡았던 그 공기. 왜 또 이러는 거야. 말도 없이 무섭게.
담당 의사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초음파를 보고 있던 의사에게 어떻냐고 물었다.
"이건 백 프로 안돼." 딱 한 마디.
아니, 뭐가? 백 프로? 대체 어떤데?
담당 의사의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수두증'이라고 가끔 이러는 경우가 있고, 뇌에 물이 차는 건데 보통은 잠시 이렇다가도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내 아기는 양쪽 뇌가 물이 꽉 들어차서 많이 부어있다고, 이런 경우 뱃속에서 죽게 된다고. 혹시나 아주 적은 가능성으로 산다고 해도 장애를 안고 태어나 얼마 못 산다고. 살더라도 며칠일거라고. '돌려 낳는다'라고 표현하는데, 분만유도제를 맞고 출산하듯 아기를 낳아서 유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배가 아프거나 뭔가 흐르거나 하는 증상이 없었냐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었다. 현실 세상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내 아기는 지금도 나에게 발길질을 하는데…….
친정엄마께 연락을 했다. 아빠와 함께 날아오다시피 서둘러 오신 엄마는, 무슨 가능성이든지 여지를 남겨두는 의사가 100프로를 얘기할 정도면 정말 안 되는 거라고 편안하게 보내주자고 하셨다. 그게 너도 아기도 더 좋은 걸 거라고…….
끝까지 잡아보려 해 봤지만 낳더라도 아프다 곧 죽는다니 내가 오히려 고통을 주는 건가, 진짜 놓아주어야 하나, 그래도 내가 엄만데 얼마를 살더라도 내가 안아줘야 되는 거 아닌가. 고민에 고민만 치열했다. 의사의 설명과 설득, 가족들의 동의 속에 유도 사산은 진행이 되었다. 남편의 무거운 표정으로 전해 듣기로, 아기의 장례를 직접 치를지 병원에 맡길지를 물었는데, 아기를 만나지 않는 게 우리에게 좋을 것 같다는 가족들 의견으로 병원에 맡겼다고 했다. 태어나면 장례.
분만유도제를 달고 누워 있으니 진통이 시작됐다. 분만 대기실 옆 자리 산모는 진통이 심한지 계속 욕을 해댔다. 난 그저 슬픈 마음으로 조용히 진통을 견뎠다. 분만대기실에 누워 있자니 산모들이 진통하다 분만실에 들어가고 산모가 소리를 지르고 조금 후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를 반복했다. 내 차례구나. 진통이 더 심해졌고 분만실로 옮겨졌다.
내 몸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나왔다. 그런데, 조용했다. 아기 울음소리도, 누군가의 말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뭔가 분주한 듯한 분위기만 느껴졌다.
그렇게 내 아기는, 떠났다.
분명히 내 뱃속에 아기가 있었고 아기와 대화했고 교감했고 노래도 불러줬는데……. 아까 밥도 잘 먹었고 아기도 계속 나에게 신호를 보냈는데……. 우린 헤어졌다.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울음소리 한 번 듣지 못한 채. 딱 20주를 채우던 날. 내 아가. 내 아들...
내가 아기의 존재를 알고 나서 잠시나마 두려워해서 그랬을까? 내가 아기가 힘든 줄도 모르고 신혼여행을 가서 그랬을까? 내가 너무 힘들게 해서 날 떠나간 걸까?
그러고 나서 한 1년쯤 뒤였나, 꿈을 꿨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 벚꽃길이 주욱 펼쳐진 예쁜 동네. 집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데 서너 살쯤 돼 보이는 한 아이가 있었다. 시장에 가는데 계속 따라오길래 엄마는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엄마를 잃어버렸단다. 파출소에 데려가 내 인적사항과 아이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적고 실종아동으로 신고해 줬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잠시 내가 데리고 있게 되었다. 시장 골목을 누비며 간식도 사 먹이고 같이 달리기도 하고 정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을 놀다 보니 피곤해하는 아이. 품에 안으니 잠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오길래 옷깃을 여며 아이를 폭 안고 파출소로 다시 갔다. 그런데, 걸어가는 사이에 어느새 품 속에서 사라져 버린 아이. 분명 편안하고 예쁜 얼굴로 꼭 안겨 잠이 들었는데, 어디로 사라졌을까……. 공허하고 슬펐다.
잠에서 깨서 한참을 울었다. 날 떠난 그 아기가 나에게 와주었던 것 같았다. 엄마 품에 안겨보고 싶었을까.. 그렇게라도 내가 안아줬던 거라면, 그 편안하게 잠들었던 얼굴이 내 아가의 떠나간 모습이라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아가야, 똘똘아. 엄마는 아직 네가 움직이던 그 느낌을 못 잊어. 꿈에 왔던 그 모습을 못 잊어. 엄마가 너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설거지를 하던 때의 행복을 못 잊어. 언젠가 먼 훗날, 천국에서 꼭 만나자. 엄마가 꼬~옥 안아줄게. 많이 사랑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