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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쌉쌀 Mar 13. 2024

우울증. 평생의 친구였던가

난 우울하고 불안하다

나에게는 우울 분자가 있다고 여기며 살았다.

내가 우울한 이유는, 늘 외로워하고 쉽게 우울해지는 아빠의 피가 나에게 흘러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우울감은 그저 핏속에 섞여 흐르는 내 일부라고, 별 일이 아니라고 넘겨왔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부모님의 싸움과 폭력도 내가 감당할 일이라 생각했고, 데이트 폭력으로 시달리면서도 그 사실을 부모님과 주변인들에게 숨기기에 급급했을 때도 난 우울이 정말 우울임을 무시했다. 슬픔과 비극이 그냥 자연스레 내가 이겨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공황 증세가 수시로 찾아오고, 그 때문에 응급실에 가서 정신과에 가봐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난 늘 그래왔으니 내가 얼마든지 흘려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참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는 사실을 은연중에 느끼면서도 항상 부정하고 간과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그 바닥이 드러난 것 같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본인들의 의견이 강해질 때, 다툼이 일어나면 그 상황이 너무 괴롭고 어떤 도움 줘야 할지 수많은 생각들로 혼돈이 일어났다. 아이와 미술상담을 받아도, 심리검사를 해 봐도 상담사의 결론은 비슷했다.  "엄마가 심리상담을 받아보세요."

내가 자라오며 갈등의 상황에서 해결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 다툼에서 내 역할을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또 어떤 상담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이야기도 했다. 어쩜 그 말들에 바로 수긍이 가던지.

부모님은 늘 크게 싸우셨고, 우리를 자주 혼내셨다. 때리고, 집에서 쫓아내고... 언니도 싸우다가 나를 때리기 일쑤였다. 고등학교 때 만나 사귄 남자친구는 나에게 집착이 심해서, 만나자는 이야기에 부모님께 물어보겠다고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다 나를 때렸다. 그러고 나서 미안하다고 빌고... 협박 때문에 헤어지기도 쉽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에서 나는 일방적인 약자였다. 갈등을 해결할 입장 자체가 못되었던 것 같다. 내 목소리를 내면 항상 폭력들은 더 심해졌다.

'상담을 받아라'는 권유를 아이들 상담을 통해 네 번쯤 듣고 나니 정말 나의 문제구나 싶으면서도 또 내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집 상태는 누가 봐도 우울증 걸린 주부의 집이라 할 만큼 어지럽고 어수선했고 나는 자꾸만 무기력해지고 짜증을 잘 내기 시작했다. '아, 내 힘으로 안되겠구나. 내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아차 싶었다.

정신과에 예약을 잡고 심리검사를 받고 의사를 만났다. 우울과 불안이 굉장히 높다는 결과. 심장 두근거림을 자주 느꼈는데 그것도 수치로 나타났다. 느낌만이 아닌 실제 몸의 반응이었던 거다.

약 복용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행히 약이 잘 맞아, 눈엣가시였던 어질러진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집이 훤해져 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적응이 되어선지 약이 부족했던 건지 곧 제자리.

그러다 남편의 행동마저 이상해 보이고, 여자가 있는 건가 의심하게 되었다. 남편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약 먹더니 이상해졌냐고 하며 화를 냈다.

말은 참 미웠지만 '그래, 내가 하다 하다 의심까지 하는구나. 정말 내가 미친 건가.' 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 의사에게 얘기하니 의사도 약을 더 늘려주며, 이런 식이면 치료가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아, 내가 미친 거구나.'

약을 늘리고 나를 반성하며 마음이 다시 누그러졌다. 그런데 다시 눈에 거슬리는 남편의 행동. 난 알아버렸다. 남편의 성매매를……. 그런데 정신과 의사마저 내 심리문제로 판단하고 약을 늘려줬었다.

우울증이란 이런 낙인마저 감당해야 하는구나. 불리한 상황에선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구실도 될 수 있는 거고, 여자의 촉이라는 것도 불안한 심리상태로 인한 이상반응으로 여겨질 수 있는 거구나.

결국 나는 다시 공황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약을 늘렸다.

우울과 불안은 이렇게 나에게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냥 나의 반려자려니 생각해야 될까. 나는 평생 우울하다. 평생 불안하다.

그럼에도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으니 난 아직 회복력이 있는 걸까. 아니면 바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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