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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쌉쌀 Mar 12. 2024

내가 착해서 좋다는 남편

난 이제 그게 그리 좋지가 않다

부모님은 나를 '속 한 번 썩이지 않은 딸'이라고 하신다. 남편에게 나의 무엇이 가장 좋았던 거냐고 물으니 '착해서'라고 한다.

「속 썩이지 않는 착한 사람」그게 나다.

어릴 때, 백설공주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새엄마(마녀)가 온갖 술수로 백설공주를 해치려고 했지만, 백설공주는 여러 번의 위기를 겪고도 착한 심성으로 마녀를 미워하지도 않고 난쟁이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백설공주 애니메이션에서 백설공주가 숲 속 동물들과 소통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아주 착하게 살면 동물들과도 소통이 될 거라는 황당한 믿음을 가졌었다. 다행히 나는 온순한 기질에, 엄격하디 엄격한 집안 분위기까지 더해져 반항이나 특별한 요구 없이 착하고 조용하게 자랐다. 나는 아직도 지인들에게서 착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착한' 내가 답답하고 싫다. 상대방의 요구가 조금 무리하다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받아들이고 있고, 분명 기분이 상했는데 미소를 짓고 있다. 화를 내야 할 상황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다가 뒤늦게서야 속으로 시뮬레이션만 한다. 그마저도 소심하고 예의 바르게. 이건 착한 게 아니라 바보지.

착한 딸이 되려고 4남매나 되는데도 집안의 대소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내가 챙겼다.  착한 와이프가 되려고 남편이 싫어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하물며 내가 외출 후 돌아오면 은근히 짜증을 내길래 남편이 있는 시간엔 따로 외출도 하지 않았다. 착한 며느리가 되려고 시어머니의 부당한 지적이나 이해 안 되는 행동에도 반기 한 번 들지 않고 수긍을 했다. 착한 친구가 되려고 혹시라도 내 말이나 행동이 친구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는 않을까 매 순간 신경 쓰며 행동했다.

그 결과로.. 부모님을 위해 집안의 일들을 모두 챙기니 뿌듯하지만, 나머지 형제들이 으레 내가 하려니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 남편이 없는 시간에만 약속을 잡다 보니 때론 내 마음이 답답하다.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99% 찬성해 줬더니 나를 배신하고 나쁜 짓을 했다. 주변인들은 무언가 부탁할 일이 생기면 나부터 찾는다. 당연히 해줄 거라 믿으면서.

물론 이런 노력이 다 바보 같은 짓은 아니겠지만, 나의 마음과 소리를 늘 꾹꾹 눌러 담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집안 대소사를 계속 주도해서 챙기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남편과 헤어지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이제는 시어머니께 나도 목소리를 내고 싶은 건지 그냥 조용하고 평화롭게 넘어가길 원하는 건지.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나를 알고 싶어서 심리학 책도 참 많이 읽었다. 그런데도 나를 아직도 너무 모르겠다.  참 미련하고 어리석고 답답하다. '착한 사람' 말고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혜롭고 총명하고 현명한 달콤쌉쌀. 앞으로 잘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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