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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死

귀찮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by 달콤쌉쌀

요즘 약을 띄엄띄엄 먹어서인지 무기력이 심해졌다. 움직이기도 싫고 운동하기도 싫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싫다.

아이들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너무 귀찮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빨래를 개야 하는데, 강아지 쉬를 치워야 하는데, 설거지가 저리 많은데 다 귀찮다.

주말이라 딸들은 각자 놀러 가고 남편은 복싱을 하러 갔다.

남편이 나가기 전 내려준 커피와, 둘째 딸이 먹겠다는데 만들기가 귀찮아서 큰딸과 용돈 협상 끝에 얻어먹은 토스트가 오늘 식사의 전부다.

혼자 있는 동안 꼼짝도 안 했더니 배가 계속 꼬르륵거리다 못해 천둥이 치는데도 뭘 먹기가 귀찮다.

손이 떨리고 어지럽기 시작한다.

다리가 저린다. 머리도 아파온다. 식은땀이 난다.

아, 몇 번 겪어 본 저혈당이다. 쥬스든 사탕이든 먹어야 한다. 아는데, 급한데, 빨리 먹어야 하는데 움직이기가 귀찮다.

팔다리가 떨리는 채로 20분쯤 있었나, 누가 집에 와서 쓰러진 나를 발견할까 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초콜릿을 조금 먹었다.

잠깐 반짝하더니 다시 어지럽다. 이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신호다. 아주 간단하다. 그런데 움직이기가 싫다.

그러다 웃기게도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귀찮사(死)입니다." 하며 가족들에게 나의 사망을 선고하는 의사의 모습.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 사망하셨습니다."

무기력이 심해지지 않게 약이라도 꾸준히 먹어야 했고, 밥이란 걸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날 만큼 오래도록 아무거나 줏어먹고 말았었고, 저혈당을 느끼면서도 부엌에 가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속이 쓰린데 누워만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의 나는 자주 이렇다. 내가 혼자 살게 된다면 아마도 굶어 죽을 거라는 상상은 종종 했는데 이쯤 되면 꼭 굶어서라기보다 귀찮아서 죽게 될 것 같다.

약 없이도 힘차게 움직이고 싶은 쓸데없는 자존심에 약을 피하다 이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우울증인 게 너무 싫다. 대부분은 시간 많고 할 일 없어 저러는 거다 생각하니... 약해빠져서 저런 거다 생각하니...

나도 다 아는데… 난 사람이고 고로 움직여야 하고 모든 삶은 다 힘이 든다는 걸……. 아는데 안된다. 꼭 내가 무언가 콕 집어 힘들어서만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

그나마 오늘의 활동이라고는 갑자기 생각이 나서 폰을 들고 글을 쓰고 있는 것뿐이다. 팔이 달달 떨리는데…….

이 글을 올리고 나는 얼마나 지나서야 부엌으로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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