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에 빠졌다. 일하다 일이 뜸할 때, 저녁에 할 일이 없을 때, 그냥 무언가 하고 싶을 때…….
아무거나 따라 쓴다. 내가 좋아하는 가요 가사를 따라 쓰기도 하고, 성경 구절도 따라 쓴다. 필사책을 사서 기본 모음 자음도 그냥 따라 쓴다. 이번에 산 필사책은 에세이, 소설, 시 등 가리지 않고 좋은 글귀들이 담겨 있어서 매번 감동을 하곤 한다.
뭐든 쓰기 전에 곱씹어 읽은 후에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쓴다. 내가 쓴 걸 다시 읽는다.
가요든, 성경이든, 소설이든... 왜 다 내 마음 같고, 날 위로하는 것 같고, 나한테 하는 얘기 같고, 내가 하고 싶던 말들 같은지. 그 과정에선 잡념이 없다. 오롯이 글과 나만 있다. 위로가 된다.
하,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나에게 위로가 확 밀려들 즈음엔 글자가 두 겹으로 겹쳐 보인다. 눈앞이 흐릿하고 초점이 맞지를 않는다. 눈을 한참 감고 있어 본다. 몇 번 눈을 깜빡인 후에 초점이 맞으면 다시 쓰기 시작한다. 나의 힐링을 깨는 게 노안이라니……. 낭만이 깨진다. 힐링에서도 한 걸음 달아난다.
시력이 완전했을 때 필사의 즐거움을 알았다면 얼마나 더 만끽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괜찮다. 잠시 눈을 감거나 인공눈물을 넣는 걸로 잠깐 멀어진 힐링의 세계에 다시 들어갈 수는 있으니. 다만 널 이제야 만난 건 좀 아쉽구나.
아, 필사했던 책에서 글을 잘 쓰려면 묵혀두라는 말도 있었는데, 퇴고가 길어야 좋다고. 난 쓰면 올린다. 뭐든 느린 내가 서두르는 건 이것뿐인 것 같다. 나도 이젠 퇴고를 거듭 해봐야 하나. 아니, 꾸준히 쓰기나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