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뭐길래 이리도 다사다난할까. 과학자 김상욱 님이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에서는 우주의 대부분이 무생명체인데, 극히 일부인 생명체가 우주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일이라 이렇게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그 이론이 꽤 그럴싸하다. 살아있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이 광대한 우주는 거의 다가 생명이 없다. 이런 어색한 존재들이니 살아남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해서 삶이 힘들다고들 하는 걸까.
이번 달엔 엄마가 칠순을 맞이한다. 친구분들과도 잘 만나고 잘 놀러 다니시는 건강한 우리 엄마. 막냇동생이 내년 초에 장가를 간다. 나와 11살이나 차이나는 늦둥이. 아빠가 기다리던 결혼을 드디어 한단다. 칠순 준비를 작게나마 하고, 동생 결혼 준비로 이것저것. 참 활기가 도는 시기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많이 받은 울 아빠는 생전 아무리 아파도 식사를 못하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걸핏하면 끼니를 거르거나 조금만 드신다고 한다. 거기에다 여기저기 통증으로 매일 진통제 없이는 안된다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지켜보자면 이러다 무슨 일이 날까 싶어 무섭다고 한다.
폐암 3기로 4개월 시한부를 선고받고도 여기저기 전이되는 암들을 다 이겨내며 2년을 넘긴 내 여동생은 다시 재발이 되어, 지금 치료 중인 병원에서는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단다. 암센터로 가서 방법들을 찾아보고 최후의 수단으로는 암세포가 퍼져있는 손목을 절단해야 한단다. 결혼식도 앞두고 있으니 나 아닌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겠다고...
아빠엄마는 영정사진을 찍으셨고, 동생은 가족사진을 찍자고 한다. 사람 일 모르는 거라며. 찍는다면, 너무 슬프게 찍는 가족사진이 될 것 같다.
삶은 양면성이 참 뚜렷한 것 같다. 잔치와 죽음을 함께 준비하는 현실. 행복과 불행도 한 끗 차이. 지병이 아니라 해도 모두가 죽음을 앞두고 살고 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많이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장기기증희망신청도 하고, 하루하루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더 덤덤할 수 있도록. 삶은 그래야 하는 것 같다.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태어나지 않겠다'다. 그냥 흙으로, 돌로. 무생명체로 우주의 일부가 되리라. 삶은 이미 살아봤으니 되었다. 사는 동안에만 충실하고 싶다.
배우 김수미 님이 장례식장이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던데, 나도 늘 그렇게 생각한다.
난 열심히 살고, 그날엔 열심히 살았으니 잘 가라는 지인들의 인사와 함께 깔끔하게 떠나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들을 모두가 잘 이겨내며 살아주기를. 우린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