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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by 달콤쌉쌀

나의 최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배우 변요한이 읊었던 대사. 내가 참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그 대사를 하면서 배우가 지었던 표정과 배경까지 다 외울 수 있을 정도다.


2022년 시작한 학교 일을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기로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통제 안 되는 여러 아이들과, 학폭까지 간 사건, 그로 인한 학부모들의 무리한 요구들까지... 이제 그때의 지침이 확 몰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점점 나의 영역이 아닌 일들이 많아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우울증 때문이다. 지겹다, 정말. 학교에서 아이들 돌보다 보면 갑자기 손목을 긋고 싶은 너무 강한 욕구가 올라오곤 했다. 이성을 딱 붙잡고 혼자 속으로 "안돼, 안돼."를 반복하다가 이러다 큰일 날까 싶어서 얼른 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복귀를 했는데 이젠 아이들에게서 느꼈던 귀여움과 애정이 점점 식어가는 걸 느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별 감흥이 없달까.


막상 그만두자니, 이 미련 맞은 성격은 또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아쉽기도 하다. 이 예쁜 아이들을 중도 포기한 나니까. 후임 선생님이 정말 좋은 선생님이시면 좋겠다. 그런데 출근시간이 다가오는 건 너무너무 싫다. 요즘 기분 참 아이러니하다.

일을 그만두면 일단, 아무것도 안 할 계획이다. 최대한 아무것도. 얼마동안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다 나도 좋아하는 '무용한 것들' 먼저 실행해보려고 한다. 컬러링북에 색칠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가을이 옴을 느끼고, 아이들 반찬을 만들면서 잠깐 좋은 엄마인 척도 해보고, 화장실을 청소하며 뿌듯함을 느끼고... 보석십자수도 해볼까? 그러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을까? 무용한 시간을 보내며 유용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면 그보다 좋을 건 없을 것 같다. 솔직히는, 지금의 마음으로는 꼭 유용한 걸 찾아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잉여인간처럼,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집에만 가만히 있고 싶다.


달, 별, 꽃, 흘러가는 시간... 그런 것들이 나를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대로 새로운 백수생활을 시작해 본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이 있겠지. 시간에 맡겨보자. 약도 열심히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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