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생긴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by 달콤쌉쌀

어제 글을 올리고 지난번 올린 글이 언제였었나 봤더니 네 달만에 올리게 된 글이었다. 그동안엔 쓰고 싶어도 글이 이어지지 않아 단어들만 마구 나열해서 나 혼자 보게 저장만 해두거나, 나중에는 그조차도 의욕이 나질 않아 내버려 두었었다. 아, 내가 네 달 전 에너지 정도로 회복이 된 건가 하고 조금 반가웠다.

우울증 환자들이 조금 호전이 되면 이제 낫나 보다 하고 임의로 단약을 하거나 치료에 소홀해져서 급격히 다시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지만, 이대로라면 내가 곧 좋아질 것만 같다. (이 순간에도 몸이 떨리는 건 calm down 하라는 신호인가...)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해야 한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들이라고 봐야 하나. 와우, '하고 싶은 일들'이라니! 내뱉고 보니 이 또한 얼마만인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해야 하지만 못하는 것들만 가득했었다. 청소 주기가 자꾸 늘어나고 설거지는 쌓여만 가고 집이 어질러지니 스트레스는 커지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 겨우겨우 치웠고, 설거지 대신 그릇에 받아둔 물을 새 물로 흘려보내는 정도만 해가며 할 일은 그대로 쌓였다. 아이들이 신을 새 양말이 수시로 없었고, 내가 아끼고 아끼는 우리집 강아지도 굶는 경우가 점차 많아졌다. 미안해, 울애기...

며칠 전부터 집청소를 너무나 하고 싶다. 그래서 애꿎은 쇼핑몰들만 자꾸 들락거리며 청소용품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새치염색도 해야 하고, 답답해 보이는 머리카락도 산뜻하게 잘라내고 싶다. 화분 분갈이도 해야 하고 내가 없는 사이에 쓰레기가 되어버렸을 졸업식 꽃과 냉장고 속 음식들을 싹 정리하고 싶다. 아이들 입학 준비도 해줘야 하고, 그동안 못해준 밥도 해줘야겠다. (밥은 거의 못해주긴 했었다. 그러니 조금만 하면 되겠지...) 강아지 미용도 좀 해줘야 하고 집에 필요한 용품들도 점검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 나 스스로 느끼는 나아지는 시그널들이 너무 반가워서 마음 같아선 병실을 뱅그르르 돌고 싶을 지경이다. 아, 그런데 정신과 병동에는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곳이 24시간 CCTV 녹화 중이다. 정신 차리자.

한편으로는 집에 갈 일이 걱정이다. 병실에 있으니 집에서 늘 사춘기 아이들과 부딪히던 환경에서 벗어나 감정을 자극받을 일도 적고 갈등상황도 피할 수 있었는데, 돌아가면 나만 조금 바뀌었거나 비슷할 뿐 아이들은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소하고 싶은 지금의 기분이 언제까지 가줄지도 의문이다. 처음으로 우울증 약을 먹었을 때, 에너지가 넘쳐서 책장을 비워내고 내다 버릴 만큼 집을 정리했었는데, 그때만큼 급격히는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끝낼 때까지는 그 마음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갈등상황에 전처럼 집을 뛰쳐나가거나 약을 몰아먹지 않을 만큼 안정된 마음, 만사가 다 의미 없고 귀찮아서 집이 창고가 되어가는 걸 보며 스트레스만 받고 있던 나와는 달라질 모습, 전화벨만 울려도 짜증이 나거나 긴장이 되던 내가 전화벨이나 알림 소리에 좀 편안해질 미래. 그걸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하면 조금 설명이 될까.

글은 정리가 안되는데 글을 쓰면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정리가 되는 듯하다. 긴 우울의 터널, 어둠의 터널, 혼란의 터널을 빠져나가야지. 우울증 약이 있는 세상에 살아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세상에 살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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