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 8
일찍 자는 생활에 익숙해졌으니 일찍 일어나는 것도 해보려고 합니다. 출근하는 배우자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6시 15분 쯤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였으면 이틀만에 포기했을텐데, 같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으니 무거운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아요. 작심삼일이라고 오늘은 유난히 아침에 잠을 깨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제 생리를 시작한 탓에 몸이 좀 더 피곤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도 있습니다. 그냥 조금 더 잘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일어났고 아침 스트레칭은 하지말까? 싶었지만 가볍게라도 몸을 풀었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습니다. 침구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짧게 몸을 이완하고, 세수와 양치를 하고, 물을 마십니다. 서재로 들어오면 영어를 한 문단 필사하고, 구몬 한자도 열 장 읽고 씁니다. 그 다음이 글을 쓸 차례입니다.
이 모든 아침 루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드는 건 역시 이 글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 말이나 쓰고 싶고, 또 아침에 눈을 떠서 특별한 목적 없이 글을 써내려가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하니 시작한 일종의 모닝저널입니다. 전 날 있었던 일을 쓰기도 하고, 아무거나 그 날 책상에 앉아 떠오르는 내용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한 페이지를 채우는 일이 정말 어려워요. 아무도 보지 않는 공책에 썼더라도 쉽지는 않았겠지만,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는 글을 쓰는 건 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글, 내 사진을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러워 아예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게 싫어서 시작한 일인데,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힘을 더 빼고 써봅니다. 그저께는 첫 한 문장을 시작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누가 본다고 해도 고작 몇 명이고, 또 그 사람들은 대체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나는 어떤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가, 한참을 고민합니다. 오늘은 아침에 글을 써서 올리는 건 이제 그만할까? 혼자만 보게 일기장에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왜 그만하고 싶을까요? 이 질문에 ‘그냥’, ‘귀찮아서’라고 대답하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두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그만하고 싶은 이유는 아마 온라인에 게시된 모든 글이 내가 삭제하는 것과 관계없이 영원히 어딘가에 흔적이 남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겁니다. 나는 우리집 벽에 무엇이든 그렸다 지웠다 할 수 있지만 사실 온라인은 모두가 볼 수 있는 담벼락인 셈이니까요. 내가 지워도 어딘가에는 그 낙서의 사본이 남거나, 지운 낙서의 흔적을 누군가 나중에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 사실이 무섭습니다. 10년 뒤에, 아니 당장 내일만 되더라도 나는 이 글을 창피해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왜 저런 말을 했을까 후회하게 될 수 있다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나는 내가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지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은거구나, 마침내 답이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니라 남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할건지 상상해봅니다. 만약 내가 온라인에서 이런 글을 만났습니다. 오,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넘길겁니다. 관심이 별로 없을거예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너무 ‘구려도’ 나는 뭐야, 이 사람 별로네 하고 또 넘길겁니다. 역시 관심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좀 별로인 사람이라는 증거를 여기 남기더라도 그건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이렇게 구린 글을 굳이 올렸다고? 싶다면 적어도 그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일테니 기뻐해야 할겁니다. 역시,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광명을 찾아야겠어요.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