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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Oct 03. 2016

우아하게 세상을 떠나는 방법

소망에 관하여


1. 소망 vs. 버킷리스트 vs. 소원


유난히 무덥던 올 여름, 처음으로 춤을 배웠다. 또 하나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나에게 소망은 소원이나 버킷 리스트와는 좀 다르다.

버킷 리스트는 일종의 ‘하고 싶은 일’로 그 달성 여부는 시간과 돈의 자유에 달려있다. 내게는 로마를 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단지 현재의 금전적 상황을 고려하여 ‘안 할 뿐’. 즉 버킷 리스트는 의지의 크기에 따라 완성가능한 일이다.

소원은 자신의 의지로 이룰 수 없는 일들이다.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나, ‘자식의 결혼’ 등 타인이 자신의 뜻에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소 비현실적인 내용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소원은 밖으로 향한다. 하지만 소망은 자신에게 품는다는 점에서 보다 사적이며, 그래서 감히 입 밖으로 내기 어렵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의 의지가 필요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적절한 타이밍이나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신 혹은 우주의 섭리가 작용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소망이 이루어지진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며 보기 드문 삶의 축복이다.


2. 나에게 춤이란


기본적으로 몸치이기도 하지만, 몸치 여부를 떠나서 내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춤’이라는 것은 거부감부터 드는 행위였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무용 시간이 싫었고, 춤의 순서는 기억할 수도 없었으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려니 얼굴은 늘 굳어있었다. 평가를 위해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나를(볼 리는 없겠지만) 쳐다보고 평가한다는 것도 싫었다.

성인이 되어 운동 겸 춤을 배워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몸은 저절로 딱딱해지고 지시에는 반발심이 들었다. 몸에서부터 깊은 수치심과 반항심이 끓어올랐다.

무의식과 몸은 연관이 되어있다. 몸이 풀리면 무의식의 어떤 부분도 풀리지 않을까,싶어 모션 세라피라는 것도 받아봤지만 문제만 더 확인했다. 몸은 움직이는 것을 굳게 거부했다. 심의 문제라는 것만 확인했다.


춤을 출 수 없어도 즐길 수는 있다. 나는 관객의 지위에 만족하기로 했다.

갑자기 춤을 추고 싶은 욕구가 깨어난 것은 올초 읽었던 ‘미움받을 용기’ 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찰나를 진지하게 춤춘다’

아들러 심리학을 집약해 놓은 이 상징적인 한 구절을 보는 순간, 나는 글자 그대로 이제 춤출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춤을 출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예전에 가입했던 동호회에서 올 7월, 4년 만에 스윙 댄스 강습을 재개한다는 모집 글을 올렸을 때, `그때`가 왔음을 알았다.


첫 강습 날, 생전 처음으로 ‘춤을 잘 춘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 후로 8주, 처음으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춤을 배웠다. 심지어 미소까지 지었다.

잘 추지는 못하지만 춤에 대해 거부감이 사라졌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삶의 그 어디쯤에서 나는 과제를 끝냈고, 성장한 것이다.


3. 소망의 힘을 느꼈을 때


2015년 봄, 제주에서 김포로 오는 짧은 시간, 비행기는 난기류에 몹시 흔들렸다.

일시적인 현상이겠거니, mp3를 꽂고 잠을 청했지만 위 아래, 좌우 흔들림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몸이 순간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그 불쾌함은 꿈에서의 끝없는 추락과 비슷하게 공포스러웠다. 비행기가 옆으로 굴러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mp3를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재난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이 벌어져 있었다. 커플티를 입은 커플은 서로 얼싸안고 머리를 맞댄 채 공포를 견디고 있었으며, 어린 형제를 데리고 탄 엄마는 위급자세를 취한 아이들의 등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  

지금 죽어서 아쉬운 것이 있는가, 냉정하게 자문해 보았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자식된 도리로 죄송할 뿐 책임져야 할 자식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시 갓 출판된 책이 떠올랐다. 세상에 아주 작은 흔적을 남겼으니 삶에 미련은 없다. 비행기 사고면 깔끔하게는 죽겠구나 싶었다.


비행의 반을 난기류에 시달린 후, 태평한 목소리의 도착 안내 방송과 함께 비로소 죽음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했다. 소망이 이루어지는 만큼, 이 물리적인 육체도 점차 소멸하면 좋겠다고.


영화 ‘백  더 퓨처’에서는 과거의 변화로 인해 그 결과인 미래가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결혼이 위기에 처하자 그 결과물인 주인공은 점점 투명해지면서 존재가 사라질 위기를 맞는다.

물리적인 죽음도 이처럼 점차적인 소멸의 형태로 오면 안 될까. 소망이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그만큼씩 육체가 투명해지는 거다. 5개의 소망이 있다면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20%씩 육체가 투명해지고, 마침내 소망이 다 완료되었을 때 공기처럼 투명해져서 기쁘게, 가볍게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소망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한, 이번 생에 달성해야 할 과제일 수도 있다. 과제를 끝냈으니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내 삶과 타인의 삶에 너그러워진다. 이룰 것을 이룬 후의 삶은 여분이다. 하루하루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 다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으며 이 세상에서 소멸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소망을 갖는 것은, 일상을 감사하고 겸손하게 만들며 우아하게 세상을 떠나는 방법이다.


4.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


소망은 고구마를 닮았다. 한번 캐기 시작하니 줄줄이 따라 나온다.

첫책 출판의 소망이 이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소망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다.. (진지하게, 죽을 날이 가까워졌나 의심해보기도 했다)

게다가 하나의 소망이 다른 소망을 불러 일으키니, 영원히 투명해지기는 어려울 수도.

그러나 그렇게 소멸해가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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