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 케이블 TV에서 <마션>을 보게 되었다. 중간부터 보다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편성표까지 참조해가면서 다시 보기까지. 영화 <마션>을 보며 떠올렸던 몇 가지 것들
1. 선입견이 나를 속일 때
쥬디 덴치가 M으로 출연했던 007 시리즈 중, 은근히 거슬렸던 것이 007을 포함한 M의 부하들이 M을 부를 때의 한국말 호칭. 영화에서 출연진들은 남자 상사에게는 Sir, 여자 상사인 M에게는 Ma’am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번역할 때는 남녀 구분 없이 그냥 ‘국장님’처럼 직위로 표시하는 게 맞다고 본다. 현실에서 우리는 상사를 남녀 상관없이 직위로 호칭하니까. 그러나 남성M에게는 국장님, 여성M에게는 ‘마담’이라는 한글 자막이 붙어 불편했었다는. 서열이 있는 조직사회에서 굳이 여성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조직생활동안 남자들이 본인보다 젊지만 사회적 지위는 더 높은(훨씬) 여성을 호칭하면서 ‘걔’, ‘쟤’라고 호칭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일면식도 없더라는.
굳이 그런 호칭을 쓰는 본인이 더 우스워 보인다는 사실 정도는 좀 상식으로 알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영화를 중간부터 봤기 때문에,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에서 처음 알게 된 우주선의 ‘대장commander’은 남자이겠거니,라고 무심히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여자인 것을 알고 아차 싶었다. (심지어 대장은 결단력과 의리까지 겸비하기까지!) 나도 모르게 대장=남성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나 보다. 그냥 commander, 이 얼마나 심플한가. 나름 내가 깨어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어! 내 선입견을 깨준 것이 정말 좋았다.
2. 내가 아는 얼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주인공이 헤르메스 호로 귀환하기 위해, 모든 기기를 없애고 심지어 뚜껑마저 없는 우주선에 앉아 긴장된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리던 장면을 꼽고 싶다. 출발 직전 대장이 ‘파일럿이 준비되었’는지 묻자, 항상 낙관적이었던 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과연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마지막 여정에 따른 불안감, 드디어 ‘마카오에 배가 들어왔다’는 기쁨, 버림받지 않았다는 안도감 등등…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던, 그 얼굴
이 얼굴이다
나도 이런 얼굴을 한 적이 있다.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날. 파리의 전철 파업과 꽉 막히는 도로사정으로 드골 공항 터미널(그것도 코드쉐어를 잘못 이해해서 엉뚱한 터미널에 내렸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륙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길고도 긴 터미널을 전력으로 뛰어 헐떡벌떡 대한항공 체크인 데스크에 도착한 것이 이륙 15분 전. 초조하게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마침 데스크 직원이 한국어로 “서울에 갈 손님”이 있는지 확인, 잽싸게 수속을 밟아주었다. 거기서부터 짐과 함께 게이트까지 질주, 결국 출발 5분 전, 넘어가려는 숨을 참으며(다른 탑승객들에게 창피하니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지금도 드골 공항의 창문너머로 보이던 대한항공의 꼬리와 거기 새겨진 다소 촌스러운 한글로고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안도감, 기쁨, 안전함, 든든함으로 눈물이 다 핑 돌았었다. 그때의 대한항공은 단순히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그날 대한항공을 놓쳤다면 타국의 밤, 우물 저 아래로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절망감을 맛보았으리라.
3. 인간 vs. 돈
영화에서 NASA는 한 우주인의 생환, 그것도 성공율이 지극히 낮은 생환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인다. 심지어 중국과도 손을 잡는다.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거액의 돈을 들이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물론 이 부분은 영화의 주제와 무관하기 때문에 생략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실제 동시대 관객들의 정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돈보다 생명이 귀하다는 개념이 미국인들의 보편타당한 상식(표면적으로라도)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세월호 수색과 인양에 드는 세금을 돈낭비라며 SNS를 통해 비난하던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떠올랐다. 이미 사망한 자들을 위해 돈을 쓸 필요가 있냐며, 그 돈을 다른 곳에 써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첫째 그렇게 주장하는 본인들은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는지, 과연 예산들이 올바른 곳에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러웠고, 둘째 그들에게 국가란 어떤 개념인지가 궁금해졌다.
근대사회에서 국가란 시민과의 계약에 의해 존재한다. ‘국민의 4대 의무’와 충성심을 대가로 국가는 개개인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 관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살았건 죽었건 간에 효율성으로 그 무게가 측정될 수 없는 대상이다. 그게 기업과 국가운영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하물며 기업도 인간의 얼굴을 하고자 애쓰는 이 마당에.
…물론 속으로 저울질을 해 볼 수는 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SNS에 올려도 아무렇지 않다는, 그 무교양, 둔감함을 지닌 사람이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라는 게 더 경악스럽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가장 감동했던 것은 “세금은 그런 일에 쓰라고 걷는 것이고, 국가는 그런 일을 위해 존재한다”이라는 내용이었다. 보편타당한 상식을 갖춘 국가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