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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r 13. 2018

이블 퀸은 아직도 투쟁 중
:변화를 선택하기

feat. 미드 "원스 어폰 어 타임/ Once upon a time"

‘옛날 옛날에~’ 라는 타이틀이 암시하듯, 동화를 모티브로 한 미드.

동화가 그렇듯 절대선과 절대악을 상징하는(줄 알았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백설공주의 딸인 엠마(aka 구원자)와 절대 마법을 지닌 레지나(백설공주의 계모), 럼플(스틸스킨).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단순히 현재만을 보지 않는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라는 점에서 레지나와 럼플이 처음부터 절대악한은 아니었으며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에 주목한다. 

백설공주의 계모인 레지나, 일명 이블 퀸은 어린 백설공주 때문에 첫사랑을 잃게 되어 그녀를 미워하게 되었고, 럼플은 오히려 겁장이에 가까운 아들바보였으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마왕의 길을 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구원자 엠마를 만나면서 그들의 상황이 바뀐다. 레지나와 럼플은 시즌을 관통하여 끊임없이 선과 악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한다. 

이 둘을 통해 드라마는 “사람은 과연 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왼쪽이 럼플, 가운데가 레지나, 오른쪽이 엠마


레지나는 과거 동화세계에서 너무 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까닭에 현 시점에서도 여러 인물에게 미움을 받는다.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받았던 동네 사람(e.g.일곱 난장이)은 물론, 다른 세계(e.g. 아더왕)에서도 복수의 칼을 받는다. 과거는 항상 그녀의 뒤통수를 치며, 심지어 선행을 베풀었을 때도 과거 죄악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녀의 소울 메이트인 로빈훗이 죽음을 맞지만 구원자의 연인은 죽음에서 돌아오게 되다니, 불공평하지 않은가) 

심리적 갈등이 너무 심하다보니 시즌 6에서 레지나는 선한 자아와 이블 퀸 두 명의 인물로 분리되어 두 자아가 서로 다투기까지 한다. 엠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이런 내적 싸움을 고귀한 전투라고 부르며 도와주고 싶어 한다. 재미난 건 레지나가 개과천선을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기본 기질은 그대로 라는 것. 여전히 화를 잘 내고 상처를 입고 입도 거칠지만, 그래도 그녀는 주변인에 대한 협력과 신뢰를 놓지 않는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럼플. 그는 악을, 어두움을 좋아한다고 인정한다. 그를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벨(그렇다 미녀와 야수의 그 ‘벨’이다)의 사랑도, 심지어 벨에 대한 럼플의 애틋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선함이란 물리적으로 힘이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마왕으로 살면 그는 힘을 소유하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다. (마왕으로서의 그는 어찌나 카리스마가 넘치는지)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는 나의 오랜 화두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스스로 변하고 싶었다라는 뜻이자, 주변 선배들에게서는 그런 사례를 못 봤다는 뜻이다. 

나는 과거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지만, 과거에 알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되려 그 과거로 끌려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그들은 항상 나를 현재의 모습으로 봐주지 않고 과거의 잣대로 판단했다. 새총의 고무줄은 아무리 벗어나고자 힘껏 몸을 늘여봤자 끊어지지 않고 반드시 스타트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고무줄 같다고 생각했다. 상처입는 관계를 지속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과거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가끔 나는 긍정적인 답변을 은근 기대하면서. 나의 오랜 역사를 아는 친구에게 “내가 변했냐”고 물어본다. 얼렁뚱땅 대답을 회피하는 걸 보면, 나는 내가 기대했던 만큼 변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레지나의 마음을,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 어떤 차원의 세계이든 그녀는 여전히 사악한 여왕이지, 회개한 여왕이 아니다. 그 때문에 레지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삐뚤어질까, 이블 퀸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힘겹게 갈등을 견디면서 선함을 선택한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는 사람은 ‘못 변하는 게 아니라, 변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변화를 통해 얻는 것보다 변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을 사실은 더 열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블 퀸이 어렵게 어렵게 선함을 선택하는 이유는 모든 동화의 결말인 ‘해피엔딩’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반면 럼플이 원하는 건 강해지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마왕을 포기하는 것이란 약해짐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나니 문득 의문이 든다. 럼플의 경우 마왕이 아니더라도 강해지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마왕만이 강해지는 방법이었을까? 다른 방향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변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모험을 한다는 것이고, 모험의 끝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성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성장하고 싶다면 변화를 택해야만 한다. 


내 변화의 목적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맺는 거였다.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스스로를 오픈해야 한다. 즉, 과거를 덮어놓은 상자를 열고 내가 누구인지를 들여다 보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무의식은 그걸 회피한 거다. 너무 무서우니까. 그리고 내가 변화를 원하는 데 안 된다며 스스로를 속여온 거다. 내가 레지나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럼플일 줄이야. 쩝. 


...

시즌 6, 이블 퀸은 아직도 투쟁 중이다. 그녀의 해피엔딩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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