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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Dec 26. 2016

내가 먼저.
커리어 선택은 그 다음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왜 중요한가

자신을 파악하라는 것은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처지(불경기, 고용불안, 낮은스펙)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고 (이런 부실한 나를 고용해 준) 고용인에게 감사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성격이 고약한지 아닌지를 알라는 것도 아니며, 적성을 찾으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것을 견디어내지 못하는지 자신이라는 사람의 범위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해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주어지는 인생의 다음 과제 –고등학교-대학교-취직-승진-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정작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양이’인지 ‘개’인지도 알지 못한 채, 엉뚱하게 ‘소’ 흉내를 내며 살고 있다. 사실 요즘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자신이 고양이임을 안다 할 지라도 소 노릇을 해야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고양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다는 것은 비록 겉으로는 소 노릇을 할지언정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알고 있고, 자신의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고양이임을 알면서도 소 노릇을 할 수 있는 능력,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마키아벨리의 말을 빌려 ‘시대에 맞추는 재능’이라 표현한 바 있다.


자신의 선천적인 기질과 후천적인 경험의 결과로 생겨난 심리적 특징, 특정 상황에서의 반응 패턴 등 자신에 대해 여러 사실들을 조합해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밑바닥, 어디까지 비열해지고 치사해질 수 있는지 아는 일이다. 딴지총수 김어준은 자신의 밑바닥을 알려면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보라고 권한다. 궁핍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돌발사태에 반응하는 자신의 바닥을 봐야 내게도 이런 비열함, 치사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 주관적으로 자신을 파악하는 방법이라면, 심리검사는다소 객관적인 방법이다. 에니어그램, MBTI, 스트렝스 파인더(strength finder)와 같은 여러 심리검사나 집단 상담 등의 심리 프로그램은 개인의 심리적 특징과 패턴을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사주 등도 맹신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파악하는데 일정부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단, 사주를 풀어주는 사람의 개인적 투사가 들어갈 수 있으니, 이를 걷어내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탐구가 목적이므로 그들 관점에서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자신의 언어로 –가급적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집이 세다’라고 하면‘주관이 강한 것은 장점이나 이를 지나치게 주장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식으로 걸러 듣는 스킬이 필요하다.


자신을 알게 되어 좋은 점은 업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거절해야 하는 일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홍보일에는 적합하지 않다. Marketing PR의 일환으로 PR에이전시와 함께 전략 수립을 하거나 그들을 움직여 어떤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직접 기자를 만나거나 기업 차원의 홍보 일은 사교성이 없는 나에게 몹시 부담스럽다. 그래서 실제, 회사에서 PR쪽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역량의 확장이라는 면에서는 탐은 났지만, 완곡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욕심에 그 일을 수락했다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로 일 자체의 결과도 안좋았을 것이고,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자신에게도 화가 많이 났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선택의 순간이 왔을때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가 쉽다. 설사 그 일을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해도, 자신의 어떤 부분이 약점인지를 알고 있기에 보완책을 마련하 용이하다.

또한 자기 자신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나는타인과 있을 때 에너지가 급격히 소모되어 잘 지친다. 지친 표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 본의 아니게 결례를 저지를 때가 있어 회식 등의 모임이 있을 때는 잠깐 밖에 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분위기 맞춘다고 어색하게 자리를 지키다가 더 큰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알게 되면 자신의 커리어 플랜을 좀 더 명확하게 작성할 수 있다. 안정된 일자리가 급한 마음에 무엇이든 하겠다는 절박함으로 아무 회사나 입사했다고 하자. 일단 입사만 하면 어떤 일이건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 할 것이고, 아마 그럭저럭 맞추어 가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돈에게는 그러한 힘이 있다. 하지만 출근 내내 고민한다. ‘이것이 나에게 정말 맞는 일일까, 다른 길이 더 잘 맞는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그러다가 문득, 이 길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섬광처럼 가슴을 강타할 때, 아무 대책없이 안락한 보금자리였던 회사를 뛰어내리게 된다. 혹은 그런 깨달음이 왔어도 여전히 고민만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세월만 보내다가 회사생활을 마감할 수도 있다(그런 사람들, 의외로 많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설사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어도 사람은 그 안에서 방향을 찾아낸다. 하고 싶지 않은 일 속에 숨어있는, 내가 원하는일과 연결되는 단서를 찾아 희망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자신에 대한 지식을 나침반으로 삼아 차츰차츰 자신이 원하는 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로 구체적으로 접근해가는 것이다. 부서이동과 이직, 그리고 퇴사와 같은 직장생활의 변화는 그렇게, 자신이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일관성 있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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