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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Jan 16. 2017

생긴 대로 사는 것의 고단함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 장면


의사에서 오더리 orderly의 위치가 되어버린 윤서정, 의료법에 저촉됨에도 불구하고 타병원의 의사에게 응급환자의 수술을 부탁한다. 다행히 환자의 생명은 구했지만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사부에게 질책을 듣는다. 이때 그녀는 김사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같은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김사부가 나간 후 부들부들 떨며 자기가 미쳤다고 털썩 주저 앉기는 하지만.

김사부는 그런 윤서정의 태도를 높이 평가하며 내심 흐뭇해하고, 수간호사는 앞으로 윤서정이 점점 그렇게 살 꺼라고 장담한다.


아. 앞으로 윤서정은 기질대로 살겠구나. 그 동안 삶의 고비고비를 겪으면서 위축되었던 그녀의 기질은 이제 눈을 떴고, 기지개를 펴고 피어나겠구나. 좋겠다. …잠깐, 좋은 것인가?


#생긴 대로 산다


언제였더라, “XX세부터는 자기 기질대로 살 꺼에요.” 라는 말을 들었다.

나이들어 기질대로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러면 그전까지는 기질대로 못 산다는 뜻인데… 그닥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동시에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기질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기질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찜찜했다. 그러니까 기질대로 산다의 뜻을 제멋대로 산다와 동격으로 놓았던 거다.


기질은 주변환경에 대한 나의 타고난 반응패턴 즉, 나의 본성이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기질은 좋거나 나쁘다 식으로 평가 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다만 주변환경이 좋다, 나쁘다라는 꼬리표를 달뿐. 내가 그러한 주변환경의 평가를 내면화해서 (그 집단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그 규범에 맞게 스스로 기질을 억누르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성장환경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점에서 기질은 감당해야 할 ‘업’과도 같다. 서민이 ‘스무 겹 이불 밑의 완두콩’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한다면 사치스럽다는 손가락질 밖에 더 얻을 것인가.


그러나 기질은 주머니에 넣은 송곳과도 같아서 언제까지나 감춰지지 않는다. 설사 세상사는 데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마음이 편한 어떤 것. 기질은 도저히 포기되지 않는, 본능적인 삶의 기준이다. 이를 빨리 파악할 수 있으면 살아가기 조금 편하련만, 기질은 세상사를 겪어야만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저기 부딪쳐 보고 자신의 리액션을 직시해야 비로소 자신의 형태(원형인지, 사각형인지)와 부피(그릇의 크기일까)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자신의 기질을 안다는 것은 세상과 나의 경계선, 즉 생김새를 안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생긴 대로 사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이것이 개성화 individualization의 기본 조건이다.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기 기질대로 살아도 된다’라말은 (나는 그대로이지만) 주변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뀐다, 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의 상황이 바뀌어서 보는 눈(즉 평가의 기준)이 달라질 뿐이다’ 라고도 했다. 실제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feat. 강태공)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썰전의 유시민 작가는 정계에 있을 때 ‘좋은 얘기도 어찌 저리 싸가지 없이 할 수 있느냐’는 평을 받았고, 그로 인해 불필요하게 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계를 떠나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한 그는 여전히 논리적이면서 직설적이지만 싸가지 없지는 않다. 심지어 나쁜 얘기도 품격있게 한다는 평을 듣는다. 그가 변한 것일까? 세간의 평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나쁜 평가가 꼭 맞는 것이 아니듯 좋은 평가도 맞는다고 할 수 없다’며 ‘괘념치 않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제사 세상이 나를 알아봐 준다며 거드름을 피우거나 자신의 세상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어필할 수도 있으련만, 그의 발언은 평판의 속성과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그에 대한 적당한 무심함을 보여준다.


이게 쉽지가 않은 게, 직장인의 경우 주변상황의 우호적인 변화란 대개 승진을 의미한다. 서열집단에서는 한 단계 위로 올라가면 용인되는 것들이 늘어난다. 서열의 속성을 착각하면 자신이 정말 잘나서 주변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타인에게 무례해지기 쉬운 상황에서도 상황의 본질(이 또한 지나가리라)을 이해하는 것, 현상에 도취하지 않으며 자신의 밑바닥을 잊지 않는 것이 기질대로 사는 것의 조건이 아닐까. 타인의 의도나 눈치에 따라 흔들리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접고 폄이 자연스럽고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기질대로 사는 법일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이 일천한 생의 초반에는 기질대로 살기 어려운 게 맞다 . 청년기 나의 옵션은 무조건 상황에 맞추어 나를 ‘죽이는’ 것 뿐이었다.


나이 들어서 기질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한 삶을 제대로 배운다는 뜻이리라.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서, ‘이번 생은 틀렸어’가 아니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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