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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r 15. 2016

Good bye, Ma'am M

아델의 <Sky Fall>을 듣다가 문득 <007 스카이폴 Sky Fall>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 시리즈에서는 보스의 상관인 여성 M(주디 덴치)이 사망하고 새로운 남성 M(랄프 데인즈)이 등장한다.  

시리즈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영화사의 의도야 어찌되었건

가장 마초적이고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받는 007시리즈에

위엄과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 보스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보스의 명령에 본드를 포함한 아랫사람들이(성차별없이)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은근히 시원했었는데(기업에서 근무하는 여성 중간 관리자라면 이 감정인 이해할 것이다) 여성 M이 사라지고 다시 남성 M이 등장하는 것이 왠지 여성 보스들의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보았던 한글 자막에는 'Yes, Ma'am'이 '예스 마담'이라고 나온다. M이 남자였다면 원어로는 'Yes, Sir" 한글자막은 '네,국장님"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Ma'am과 Sir는 성별에 따른 구분일 뿐 그 의미는 똑같다.

그러니 '네, 국장님' 이라고 번역하면 되는 것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일까.

여성 리더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무의식적으로 투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주디 덴치는 1934년생의 영국의 성격파배우로 1995년 007 골든아이편에서 처음 등장한 후 7편의 시리즈에 등장해왔다.

이 전의 시리즈에서는 딱히 M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전혀 보스 스타일로 보이지 않는 작은 키, 주름진 얼굴을 한 이 여배우를 등장하면서 M의 캐릭터도 나름의 비중을 갖기 시작했다.  M의 묘미는 그녀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기존의 전형적인 여성 리더쉽 스타일을 벗어났다는 데에 있다.

세상은 여성리더들에게 여성성 (정확히는 모성애)를 기대한다.

여성들 스스로도 여성고유의 모성을 바탕으로 조직을 케어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본능이라 알려진 생물학적 모성 또한 100%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듯,

리더쉽에서 언급되는 모성애 또한 선택적인 것이다.

M의 리더쉽에는 모성애란 없다. 그녀는 오히려 남성성이 매우 강조된 캐릭터였다.  

질릴정도의 단호함,

(<스카이폴>에서 그녀는 적과 한덩이로 얽히는 우리편 007을 고려하지 말고 쏘아버리라고 명령한다)

초조한 상황에서도 절대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냉정함

(언리미티드에서 007의 생사를 알 수없자 무심코 손톱을 물어뜯는다.

하지만 곧 본드의 비행기가 위기를 빠져나오자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귀환을 명령한다),

몇번의 죽음에서 귀환한 본드에게도 어제 만난 사이인 듯 짜증을 낼 뿐, 반가움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녀의 죽음을 가져온 것은 이 여성성(모성애) 때문이었다.

스카이폴에서 M은 조직의 냉정함을 그녀에게 투사하여,

일종의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전직 에이전트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그는 조직의 수장인 M에게서 모성을 기대했고,  M의 냉혹하기까지 한 의사결정에 대해 배신감을 느껴

'엄마'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는 모성과 무관한 그녀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사결정자인 M의 입장에서는 이런 '미친 놈'의 등장에 당황스러울 뿐이다.

이 대목에서 M을 편들자면, 요원으로서의 능력이 미달된 본드를 다시 현업에 복귀시키는 것도

결국 그녀라는 점이다. 냉정함만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였다는 얘기다.(이는 모성보다는 일종의 같이 늙어가는 동료에 대한 인간적 연민에 가깝다. )


M의 리더십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우리 나라에서도 M과 같은, 기존과 다른 타입의 여성 리더를 볼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양성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그럴려면 일단 pool이 늘어나야 하는 데 현실에서 이것이 용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한쪽에서는 여권의 신장, 여성 리더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 이후 한국 기업에서 여성의 위치는 더 퇴보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지만, 현재까지 보여주는 대통령의 행보에서는 이렇다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대통령은 성(性)이나, 개인적 업적과 무관하게 '전직 대통령'의 핏줄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향후 그런 관점에서 업적을 평가하기 보다는 '암탉론'으로 일반 여성들까지 싸잡아 비하할 확률이 높으리라. 뽑은 사람들의 실수를 인정하기 보다는 결과를 탓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차세대 여성리더들의 기회가 같이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

그리하여, 박력넘치는 롤모델로서의 여성 수장, M의 은퇴가 아쉽다.

언젠가 다시 007 시리즈에 등장하기를 기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경의를 표한다.

굿바이,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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