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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r 05. 2016

팀워크와 '같이 가기'

우리가 알고 있는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은 원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빨리 가려거든직선으로 가라.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에서 비롯된 말이다.


속담의 전체를 놓고 보면 자신의 목적에 맞게 선택을 달리하라,로도 보여지는데

앞뒤 자르고 왜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문구만 이리 오래 살아남은 것일까.

아마도 어떤 형식의 조직이든 팀워크를 강조할 때 주로 이 문구를 인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을 진리처럼 엄숙하게 선언하는 조직 내 보스들에게서 나는 은밀한 음모의 ‘스멜’을 맡는다.

이속담의 앞부분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면 혼자 하라’라는의미가 된다.

회사는 직원에게 job description을 부여하며, 개인이 각자의 목표를 달성해야 팀의 최종 목표가 달성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목표달성을 위해 가장 먼저 개인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 즉 시간과 기회비용을 계산한 후 가장 합리적인 직선 코스를 택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경영방식에서 속도는 권장될 지언정 말려야 할 대상은 아니다.

덧붙여 이 속담은 ‘혼자 가면 빨리는 가도 멀리는 못 간다’를 암시하고 있는데 이는 목표가 다이어트나 금연 등의 사적 목표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업무 목표도 그럴까. (훗)

업무 목표는 윗사람과 상의를 통해 공식화•문서화되며 인사평가의 기준이다. ‘멀리 못 가게’ 상사가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것이 상사의 존재 이유니까.


‘같이 간다’는 말도 두 가지로 읽혀질 수 있다.  

첫째, 도달점(goal)이 각자 다른 두 사람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동반자로써 함께 가는 경우.

 예를 들어 책 쓰기 모임의 목표는 공동집필이 아니라 각자가 책을 한 권씩 쓰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멀리 가려면’, 즉 각자의 목표에 도달하려면 함께 가는 편이 낫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 서로 격려하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기 훨씬 쉽다. 그러니까 이때 길을 가는 두 사람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을 뜻하며, 동등한 관계이다.


둘째, 팀의 공동목표를 같이 달성하는 의미의 ‘같이 가기’, 즉 팀워크가 있다.

조직관점에서 팀워크를 들여다 보자. 사실 조직이 요구하는 덕목은 자신의 일 이외의 것에도 기꺼이 헌신(commitment)하는 태도이다. A가 일을 못 끝내고 있으면 다른 동료가 사이 좋게 도와주거나 함께 고민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솔직히 도와주려고 해도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일의 업무와 역할이 있기 때문에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업무 설명이 필요없는 단순작업이라면 모를까.

그러다보니 ‘팀워크’란 결국 모든 팀원이 참여하는 화기애애한 장기 회의와 야근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여기서의 ‘함께 가기’는 그냥 서로 짐 나눠지기 혹은 나눠 갖기에 가깝다.

이렇듯 팀워크의 과정에서는 각자의 고유 역할보다는 사실상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혹은‘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구성원의 도리가 강조된다. 이렇게 목표를 달성했다고 치자. 과연 고과도 도리를 따를까.

영화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톰 크루즈가 적에게서 핵미사일을 제어할 수 있는 가방을 빼앗아 멈춤 버튼을 누르지만, 버튼은 작동하지 않는다. 통제실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원의 회복을 위해 나머지 팀원들은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상을 입은 팀원을 대신해 총과 가장 거리가 먼 IT 전문가가 총을 쏘는 등, 팀원 각자가 원래의 역할이 아닌 일을 했을 때 미사일이 제어되고 미션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과연 팀원들의 역할이 주인공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맥락에서는 안 중요한 일이 없었고 그래서 –인센티브가 있다면- 아마도 공평하게 인센티브를 나누었으리라.

하지만 기업에서는 톰 크루즈만이 우수고과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맥락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전원을 올리는 일’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일로 간주된다.

조직에서는 누구나 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격려의 차원일 뿐, 실제로는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존재한다. 팀워크의 이면에는 중요하지 않은 일을 담당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 조력자의 헌신이 존재한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런 조력자는 대체가 가능하다.

개별성이 존중된다면 ‘같이 가기’가 훨씬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이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같이 가’려면 공통의 목표달성을 위한 짐 나눠갖기를 기쁘게 감수하거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림자 역할을 감내하는조력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같이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은, 팀장이 아니라 헌신하는 개인의 입에서 나와야 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 같이 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숲이 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외나무가 숲에 비해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의 관점인가. 나는 어떤 ‘같이 가기’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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