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혜령 Feb 21. 2016

갑질을 권하는 사회

                                                                                                                                                                                                                                                                                                                      

사용하고 있던 노트북에 문제가 생겨서 허겁지겁 L사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오래된 제품이라 서비스가 가능한 사양인지조차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기사는 윈도우 시스템을 다시 깔면 된다고,  단 시간이 좀 오래 걸릴 수 있으니 6시 넘어서 찾으러 오라고 했다.

저녁에 약속이 있기에 그러면 내일 찾으러 오겠다고 가볍게 얘기를 했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수리하시는 분의 입장에서도 좋지 않을까 했었는데 

내 생각과 달리 수리기사는 난감해 하면서 오늘 찾아가실 수 없냐고 묻는다. 

수리를 가급적 당일에 처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스쳐가는 기업의 평가 프로세스들. 

고객이 찾아가지 않으면 하나의 프로세스가 완결이 되지 않는다. 

미처리 상태가 지속이 되면 그렇게 된 이유와 상관없이 소요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에서는 불이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프로젝트의 소요시간을 줄이는 것이 고객의 만족이라는 관점에서는 그 말이 맞다. 비록 고객이 원하지 않더라도.  


딱히 나는 당일 이 노트북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프로그램 CD도 집에 있고, 시간활용면에서도 왔다갔다 하느니 내일 찾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마침 인근 도서관에 자리를 잡은 상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평가에 목을 매는 노동자의 입장이 십분 이해되기도 해서 끝나는 대로 연락을 주면 찾아가겠노라고 했다.  


수리는 결국 2시에 끝났다. 컴퓨터 반응 속도가 빨라 새로 시스템을 설치하는 일이 빨리 끝났다고 기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노트북을 찾으러 가니 기사는 노트북 작동상태를 보여주면서, 고객 만족 평가 문자가 갈 텐데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혹 좋은 평가를 강요했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며 머뭇거리길래 걱정마시라고 했다. 

그는 내가 가는 입구까지 나와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고, 본업인 수리도 바쁠 텐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어 나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S사의 프린터를 수리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공휴일이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음 날로 수리를 신청해놓았는데  센터에서 바로 당일, 당직자가 방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으시다, 공휴일이니 괜찮다 해도, 사실은 평가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데에  말이 막혔다.


빨리 처리되는 것은 불편을 겪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니 고객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이고 과해도 괜찮은 것일까. 

고객인 내가 양해할 수 있는 불편함, 나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일단 수리접수가 되자마자 프로세스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아마 평가표에는 단기간 처리, 고객 매우 만족이라고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수리내용이나  친절한 대응은 분명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미안했고 찜찜했다. 

이런 평가시스템을 만든 기업에는 불만족스러웠지만 어떻게 전달할 수가 없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수리기사들에게 왠지 갑질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기업이 그 갑질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노우폭스의 공정서비스 선언문에 따르면 "상품과 댓가는 동등한 교환"이어야 한다. 

그렇다, 나에게 이 거래는 정당하지 않았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는 지식산업의 노동자지만 4대 보험의 해결을 위해 맥도날드에서 일을 한다.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국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인 듯 하다. 

처음에 그는 "고객님의 햄버거가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을 문법적으로만 접근해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갑과 을 사이에는 갑의 소유물이 있으며 이는 갑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을보다 높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고객님의 햄버거가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은 국문법에는 맞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럽다.

갑의 소유물조차 을보다 높다는 암묵적인 동의에는, 

물건만 팔 수 있다면 (피고용인이) 개처럼 벌어도(굴어도) 상관없다는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이 깔려있다. 

피노동자의 인권, 자존감, 올바른 언어 사용쯤은 돈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파는 자가 사는 자에게 갖추어야 할 의례적인 매너를 넘어서, 비굴함을 강요하는게 아닌가 싶다. 

한쪽이 비굴해지면 다른 한쪽은 잔인한 우월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기업은 고객이 우월감을 느껴야만 구매가 발생한다고 믿는 것일까. 

물론 친절한 서비스는 기분이 좋다. 돈을 지불하는데 불친절함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친절은 파는 자와 사는 자 상호 간에 갖추어야 할 매너이지 한 쪽만의 것이 아니다. 

돈을 지불하는 자는 친절하면 안되고 오만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던가. 

그런 점에서 스노우 폭스의 공정 서비스는 갑질 문화를 부추기는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생각해 보니 '햄버거가 나오셨다'는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때 점원의 교양을 의심하고 잘못된 맞춤법을 개탄했지만 어느 한 순간 그것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해다. 

그처럼 어떤 을의 불필요한 비굴함이 당연하게 여겨질까봐, 내가 근거없는 우월감을 느낄게 될까봐 무섭다. 

내가 지불하는 적은 돈으로 나의 갑질을 정당화한다면, 나보다 더 큰 돈을 가진 재벌들의 갑질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갑질 문화를 부추기는 풍토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돈으로 타인의 비굴함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같은 노동자의 입장으로 서로를 헤아리는 태도만이 

그나마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사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율이 여기야말로 간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푸른 거탑과 머리카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