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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r 25. 2016


연필 하나의 힘-덕은 외롭지 않다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 by 애덤 브라운


책의 제목만 보고는 그냥 한 열혈 청년의 창업 성공기쯤 되지 않을까 했는데 오옷, 

이것은 한 청년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신이 가진 영성을 타협하지 않고, 

그렇다고 시스템에 무작정 반발하거나 반항하지도 않으면서도 그 영성을 아름답게 꽃피워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은, 

저자 애덤이 자신의 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능과 학력, 

회사에서 배운 자본주의적인 지식을 긍정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대개 영성을 추구한다면 절대 가난과 가진 것에 대한 포기를 떠올리는데 

이 책은 가진 자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통념과는 달리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이 세상에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려준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고귀한 뜻을 품는다면, 

그들은 실제적으로 사회를 바꾸고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도와줄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가진 자일수록, 많이 배운자일수록 영성을 추구해야 하고 

이 책의 저자처럼 왜 그렇게 자신이 혜택받은 삶을 살고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 깊이 숙고해 봐야 한다. 

(이 책에서는 투자가이자 자선사업가인 레이의 입을 빌어 애덤의 사업의 본질을 

존재목적에 대한 추구라고 정의한다. )

자신의 삶의 본질을 알고 스무살 중반에 이미 그 일에 헌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애덤은 행복한 사람이다. 

부럽다.

 

애덤은 대학시절에 참여한 선상대학 프로그램에서 폭풍을 겪으면서 

신이 이렇게 죽도록 나를 태어나게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시작한 남미 여행을 통해 연필 한자루, 노트 한권이 이 세상의 소원 전부인 아이들, 

손자가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기를 바라는 노인을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죄책감(일종의 원죄랄까?), 자신이 무엇을 잘 해서 이 풍족한 나라에 태어났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데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 후손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자신의 선조에 대한 보답이라고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일은 그의 가슴을 뛰게 한다.

베인 앤 컴퍼니 컨설팅에 입사할 만큼 뛰어난 애덤은 

그러나 항상 비영리단체의 일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게 되어 

베인의 휴직기간에 학교를 하나 세우는 것을 기점으로 빈민국에 학교를 세우는 일에 몰입하게 되고 

결국 선임 컨설턴트 3년과정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리더란 무엇인가'가를 떠오르게 한다.

'리더란 무엇인가'의 원제는 동시성 (Synchronicity)이다. 

(실제로 애덤의 이야기 곳곳에는 '동시성' 사례가 나온다. 애덤은 남미 여행 중에 만난 호엘이라는 과테말라의 가난한 농부를 자신의 기도에 대한 시그널로 받아들여 낯선 이를 따라가는데, 이 농부와의 경험은 이후 그의 삶을 바꾼다. 그러니 기도를 하고 나면 그 이후에 보여지는 것에 대해 영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신은 반드시 응답한다. 인간이 시그널을 알아채질 못할 뿐.)


두 책의 저자 모두 세상이 인재라고 부르는 학벌과 지식과 경력을 보유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추구했다. 이 '좇음'은 부모나 조부모의 삶에서 시작해서 다음 대에서 꽃을 맺는다는 특징이 있다. 위대한 업, 이란 것이겠지. 그렇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비로소 다음 대에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 새삼 확인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믿음. 인간은 누구나 남을 돕고 싶어 한다, 는 사실.

여기에도 일류 MBA를 졸업한 젊은 인재들이나, 커다란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CEO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애덤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부, 혹은 사업을 통해 기여를 한다. 

젊은이들은 기꺼이 비싼 연봉을 포기하고 이 가난한 단체의 일을 받아들인다. 


바로 이 부분, 이 직원들이 포기한 엄청난 연봉에 대해 리더로써 그가 책임을 느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너희들이 이미 알고 왔으니 가난은 감수하라, 가 아니라 이 똑똑한 사람들이 이 일에 헌신하기 위해 지불한 댓가에 대해 리더로서의 책임을 느낀다는 것, 훌륭한 일 아닌가. 그래야 단체 전체도 발전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애덤은 비영리단체를 수익을 못 내는 단체가 아닌, '목적지향단체'로 규정한다. 

이 단어 하나만 바꾼 것으로도 인식이 달라진다.

비영리 단체는 마치 매출을 일으켜서는 안되고 수익을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는 다른 말로는 열정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열정 페이는 사람의 고귀한 뜻을 소모하게 만들고 희생을 강요한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인 돈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지속가능한 단체가 될 수 없다. 


대부분의 NGO들은 절대가난을 미덕으로 알고 은연 중에 직원들에게도 가난을 강요한다. 

기부금에 의지하다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부금은 직원들이 먹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쓰여지기를 바라는 돈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에서 좋은 인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수준, 그러나 기부금을 건드리지 않는 정직한 인건비 지급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가슴이 몹시 뛰었다. 

작년, 노동자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그 열정과 뜨거움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특히 애덤의 일을 알게 된 사람들이 동참의사를 밝히는 부분에서, 작년의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벼룩시장 일이 떠올랐다. 혼자 기획하고 다만 얼마라도 옷을 기부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단순한 옷기부이긴 했지만 나하고 직접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도 참여하고 싶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좋은 뜻은 주변에 공명한다. 그래서 공자가 말한 것이다. '덕은 외롭지 않다[德不孤]'라고.


조지프 캡벨은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했고 책의 저자 애덤은 작은 일은 머리로 결정하고, 큰 일은 가슴으로 결정하라고 권한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해야 할까.

어떻게 보다는 뜻이 먼저다. 높은 뜻을 세우면 주변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공명한다. 

그리고 이 뜻들이 모여 나를 넘어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고, 세상을 바꾼다.

연필 한 자루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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