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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r 31. 2016

청기와 장수가 옳았다

              청기와 장수를 바라보는 조직과 개인의 입장


신입사원 시절, 업무가 시작되기 전 매일 팀별 조회가 있었다. 

일과 관련된 지시사항을 공유하고 인사팀에서 전사에 배포한 일종의 ‘좋은말씀’,을 읽으며 

노동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그때 읽었던 좋은 말씀 중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이 바로 '청기와 장수(seller) 이야기'.(정확하게 이 명칭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워낙 옛날 얘기라 ^^;;)


옛날에 청기와를 기가 막히게 구워내는 청기와 장수가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심지어 자식에게도) 그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기와 장수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청기와의 비법도 그와 함께 사라져서 모두가 안타까워했다는 내용으로, 

개인의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도록 주변과 공유를해야 한다는 것이 주 메시지였다. 


…말랑말랑한 신입사원답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 청기와 장수의 독점은 사회적 낭비고 말고. 나는 다 공유해야지. 

후배가 들어오면 내가 저지를 실수를 똑같이 하지 않도록 미리 가르쳐줘야지, 그것이마땅하고 옳은 일이니까. 내가 없어도 일은 돌아가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의식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십 몇년 후, 

당시 다니던 회사의 공장에 전설적인 한 부장님이 계셨다. 

오래된 기계가고장 나면 그 분 말고는 아무도 고칠 수가 없는데, 그 고치는 노하우를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만 고친다는 것. 

그말끝에 덧붙인 직원의 말. 

그래서 나이가 많아도 내보내지를 못한다고.아무도 모르니까.


그제서야 깨달았다. 

청기와 장수는 어디까지나 경영자, 오너의 관점에서 ‘나쁜 놈’이요, ‘독점’이었던 것이다.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것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밀당을 할 수 있고 맞설 힘이 있다는 뜻이다. 

요즘말로는 ‘필살기’내지는‘컨텐츠’의 보유. 이런능력을 가진 직원은 꼴보기 싫어도 대체가 불가능하다.

조직에서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은 많으니까…’이다. 

즉 특정인물 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러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이때 ‘나’라는 개별성을 가진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분업을 위한 1/n의 가치로만 존재한다. 

특히 사무직일수록 그렇다. 


회사는 특정 개인의 역량보다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개인에 의존하는 순간 회사는 무너질 수 있으니까.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맞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도 그럴까. 

시스템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IMF를 겪으면서 누구나 뼈저리게 알게 된 사실이다. 더 이상 조직은 운명 공동체가 아니다. 

조직이 운명공동체라면, 노하우는 공유를 하는 것이 맞다. 

나의 발전이 공동체의 발전이요, 공동체의 발전이 나의 발전일 테니까. 

동일 브랜드로 과일을 공급한다던가 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하겠다.


하지만 더 이상 회사라는 집단을 운명 공동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조직의 운명을 위해 구성원의 진입과 퇴출이 결정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청기와 비법을 공유하는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인가?


공유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분명 득이다. 

전체의 지식을 높여주어 다음 단계로 진보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공유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란 것이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그 공유를 통해 자신의 대체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지식의 공유를 하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개인의 입장에서는 청기와 비법을 공유하지 않아야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 필살기, 컨텐츠를 더욱 갈고 닦아 독보적인 계보를 창설하는 것이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것을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직 소유자의 입장일 뿐이다. 


그렇다면 청기와 비법은 이대로 사라졌어야 했나

청기와 장수는 청기와 사업의 비법을 정당한 가격으로 팔고 은퇴하거나 다음 길을 준비했어야 했다. 

지식의 공유라는 사회적 책임도 달성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안위도 살폈어야 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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