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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y 04. 2016

첫 책 출판 후 1년 소회

                                                                                                                                                                                                                                                                                                                    

1. 

작년, 2015년 3월에 나의 첫 책이 출판되었다. 

막연하게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사주를 보러갈 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 책에 관한 얘기를 슬쩍 꺼내면 상담가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책을 쓰려면 XX년 후에 쓰라고, 그 전까지는 책으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책 출판을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로 이해했던 거다. 


문학작품은 물론이요, 그냥 일반 장르라도 쓰면 쓸수록 글은 세련되어지고 독특한 스타일을 갖추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저자들의 초기 저서들에는 그런 반짝거림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빅 히트의 뒤에는 그 전의 헛발질의 경험들과 담금질의 세월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한번도 안 쓰다가 XX년 이후에 쓰라고? 쳇.

나는, ‘한번 시험삼아 해봤는데 저절로 일이 잘 굴러가더라’, 따위의 대박신화와 무관한 삶을 산 토성의 딸이다. 나에게 삶이란 항상 시험과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우연한 성공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2.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의 이야기꺼리를 찾아내었다. 

이런 내용이라면 내가 쓸 수 있고, 내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나름의 세상에 대한 기여였고, 내 삶이 가치가 없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첫 책은 내 첫 번째 사회적 삶에 바치는 헌사였다.

나는 조직에서 남들이 알아줄만한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사람들과 둥글둥글하게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닌지라 그렇게 조직 생활을 오래하게 될지도 몰랐다.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을텐데, 지금까지도 이 첫번째 삶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후의 삶과도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 삶을 바탕으로 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상처에 대한 나름의 핥음, 소위 유행말로 치유과정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더불어, 그런 나의 경험과 배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첫 책을 내보냈다. 


3. 

첫 책은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우선 책 덕분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내가 타고갈 수 있는 ‘말(horse)’이 생겨났다. 

회사를 그만둔 지 몇 년 지난 사람들이 자신을 설명할 때 과거의 경력으로만 설명한다면 그것은 과거와 결별한 것이 아니다. 몸만 벗어났을 뿐 여전히 스스로를 회사/지위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간혹 보는데, 솔직히 해가 더해갈수록 그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책이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내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을 꺼라고 믿었다. 

책 한권으로 잘 나가는 강사가 되리라는 꿈을 가질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나는 그저 나만의 어떤 것을 갖고 싶었다.  몇 번의 무료 강의를 하고, 책에 소개한 프로그램을 세상에 던져보고 싶었지만 지르지를 못하겠더라.

아마 누군가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멍석을 깔아주고 나는 못 이기는 척 운영하는 그런 그림을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아직도 과거의 실패가 쓰라리고, 그 실패에 수반되는 상처와 무의식적인 내면의 비난이 두려운 거다.

1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온라인 서점의 서평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비난에 직면할 용기가 생겼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면 죽을 때 백퍼 후회할꺼란 다급함이 원동력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세상에 던져보았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너무 변수가 많아서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홍보대상의 문제인지, 방법의 문제인지 혹은 프로그램 자체가 세상에 필요 없는 거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but! '빅 인세’'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정당한 인세마저 못 받을 줄은 몰랐다. 

찾아가서 얘기를 해봐야겠다 하면서도, 혹시나 출판사와 낯붉힐 일이 생길까봐 망설망설하고 있다. 


첫 책이 가져다 준 가장 멋진 일은 두 번째 책을 쓸 기회였다.  

R출판사에서 제의가 왔을 때, 믿을 수 없었고 정말로 기뻤다. 


첫 책은 그렇게 아쉬움과 숙제를 남긴 채 매듭이 지어질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이익을 얻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어떤 성취라 부를 만한 것이었고, 잘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소망 한 가지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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