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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Aug 28. 2017

필요한 것은 모두,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나에게 온 목소리

1. 어느 날 나에게 온 목소리


어느 3월의 아침, 잠에서 덜 깨어나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나는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어" 란 말이 ‘떠올랐다’. 아니, 나의 목소리를 통해 그 말이 ‘들렸다’.

‘다 가지고 있다’니 일단 기분은 좋았다. 잠결에 이런 저런 생각을 더 했던 것 같은데, 결론은 엉뚱하게  ‘그러니 갖고 있는 것들을 아껴서 잘 사용해야지. 우선 청소를 하자’로.


그 목소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무심히 ‘나의 생각'이려니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단어, ‘이너 보이스 inner voice’.

나의 목소리를 빌어 존재의 근원이 말하는 심오한 지혜, 조언...

내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지는 것. 그래서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어떤 말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밤 중에 욕실에 들어가 이혼문제로 울던 주인공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자신의 목소리로 그 말을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면의 목소리 듣기를 갈망해 왔었다. 이성과 의지를 동원해 무언가를 선택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데에 너무나 지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이제는 겸허히 물러나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귀 기울이고만 싶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불안감이 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는, 다 가지고 있으니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즉 청소)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럴 듯하다. 이중으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해리 포터>에는 필요의 방이 나온다. 필요한 자들이 요청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공간. 내게는 도서관이 그런 마법과 풍요의 공간이었다. 공공도서관을 다니면서부터 나는 소유하고 있는 책들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언제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면 소유해야 할 의미가 없다. 도서관이야 말로 마르지 않는 풍요의 뿔, 필요할 때 접촉만 하면 되는 풍요의 원천 같은 장소였다. 


그렇다면,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어서도 도서관 같은, 공간이 있다는 걸까. 아무런 경제적 대책이 없는 상황인데, 돈도 ‘다 가지고 있는 것’일까?


2. 풍요는 사람을 통해서 온다. 


4월, 코칭 과정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동기들이 아무 대가 없이, 생전 처음 본 나를 도와주고 싶어할 때, 비로소 풍요는 사람을 통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를 다닐 때 기를 쓰고 사교적이지 않았던 나는 소위 인맥이 없다. 인맥관리란 말 자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면 그나마 있던 타이틀도 사라지니, 타인의 입장에서 나라는 존재는 굳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인맥으로서의 가치는 없을 꺼라는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원래 세상이 그러니 서운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의 타이틀이 없어져도 나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여러 형태로 도움을 주었다. 인맥관리의 틀에서 벗어나니 새롭게 사람들을 만나는 게 외려 즐거워졌다. 하나하나가 다 귀하고 감사한 인연이었다. 


때로 새로운 지인들이 무한의 신뢰를 나에게 보낼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니, 저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를 믿고 이 일을 맡길 수가 있지? 왜 저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 거야? 나는 사람들을 통해 나의 새로운 힘을 발견했고, 재능을 시험해 볼 기회를 얻었다. 


묘하게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만약 삶에 관계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삶의 전반기에 미달되었던 관계 맺는 일을 지금 채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사람을 만나는 이 일이 매우 기쁘다.

흠, 그러고보니 지금의 일 또한 아주 머나먼 과거의 인연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 과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일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결국 ‘필요한 것은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원데이 커리어 멘토링: 마케팅- https://brunch.co.kr/@spillthebea/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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