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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Feb 05. 2018

어쩌다 미니멀 라이프

비슷한 연령대의 지인들이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평상시 어디가 아팠다거나 건강을 안 챙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게 함정. 어느 날 “오늘 심장이 좀 이상해”, 하고는 하루도 채 넘기지 못해 사망한다니 이건 참.  


그래서 생각한  ‘스카치 테이프’ 수명 '썰'.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아마 태어날 때 받았던 수명보다 연장되었을 것이다. 생태계의 관점에서 이러한 인위적인 생명 연장은 자연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곤란해진 자연이 택한 방법이 돌연사가 아닐까. 스카치 테이프의 수명처럼.  

요즘 스카치 테이프는 플라스틱심에 테이프가 감겨있지만, 이전에는 종이심에 테이프가 감겨있었다. 종이심 테이프는 쓰다보면 이 테이프의 수명이 다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것이 와병-임종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죽음.  

그러나 플라스틱 심을 사용하는 스카치 테이프는 테이프의 투명성이나 밀착력이 좋기 때문에 테이프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 수명을 잘 알 수가 없다. 멀쩡히 잘 쓰다가 갑자기 ‘안녕, 잘 있어’ 하며 뚝 끊기는 게 스카치 테이프의 특징.  

생명연장 자체를 못하도록, 시그널 자체를 주지 않는 것이 생태계의 새로운 개체 조절전략일지도. 

뭐, 나는 인간이 너무 많다, 라고 생각하는 지라 자연의 새로운 전략에 별 불만은 없다. 단지 이불 밖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니 어떻게 잘 떠날지를 고민 중.  


일단 집을 자주 정리한다.   

삶의 단면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삶이 끊겼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유품을 정리하러 올 제 3자의 눈에서 본 집은 창고처럼 어수선하고 윤기가 없다. 잡동사니들을 무어 이리도 구차히 모아놨나 싶다. 가구도 거추장스럽다. 일생의 마지막 침대라고 생각해 큰 돈을 들여 침대를 장만했건만 그냥 접는 매트리스로도 충분했다. 책장만큼은 자랑스럽다. 안 읽는 책은 팔거나 기증한다. (나에겐 도서관이 있다!) 


물건 중에서 제일 신경쓰이는 게 속옷. 속옷은 남들은 둘째치고 가족에게도 부끄럽다. 속옷정리는 수시로, 타협없이, 정말 타인의 눈으로 임해야 한다. 삶의 궁상스러움은 속옷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나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무심함이 거기 숨어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그래서 외출할 때 꼭 새 속옷을 입는다고. 


...

누구는 죽음에 관한 명상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가족에게 둘러싸인 임종을 꿈꾸며 결혼을 한다. 나는 자꾸 정리함으로써 죽음을 준비한다. 

불필요한 소유를 중단하고(대신 그 방향이 음식으로 전환되었다, ㅠ.ㅠ) 안 쓰는 것을 나눠주고 기증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련을 둔 물건들이 그득. 올 봄에는 정리수납전문가 지인을 집으로 초대해 자문을 받을 생각이다. 정말이지 ‘깨끗하지 않은 집’을 생의 마지막 순간에 걱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위사진은내용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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