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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r 04. 2019

재능 vs.현실:영화 '히든 피겨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이 정당화되던 시대에, 흑인+여성이라는 두 핸디캡을 지닌, 그러나 불운하게도 남다른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세 사람이 편견에 맞서 나사NASA에서 (그나마) 어떻게 재능을 꽃피우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차별에 대한 코드는 일단 내려두고, 내가 느낀 것 두 가지.

우선, 기득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가진 어른일수록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누군가의 재능에 기회를 주고 그의 발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세상에 선한 일하기, 그게 어른이 해야 하는 일이 라는 점 ( 사실 타인의 재능을 귀히 여기는 것이, 요즘 같은 불경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생으로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메리는 흑인이기 때문에 엔지니어직을 포기하고 있다가, 엔지니어링 부서의 부서장의 진지한 격려로 다시 한번 꿈을 꾸게 된다. 그는 메리를 동등하게 대하는 데 이는 그 자신이 유태인으로써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약자 입장에 있어본 사람만이 약자를 이해하는 법이다.


#천재 수학자 캐서린의 부서장은 우주와 숫자 외에는 관심이 없다. 캐서린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만 정작 캐서린에 대한 인종차별-커피포트, 왕복 40분이 걸리는 화장실-을 인식하는 데에는 한 달 이상이 걸린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후 “나사에서는 모두가 같은 색의 오줌을 눈다”며 유색인종 화장실 표지를 때려부수고 계산원 따위가 들어올 수 없는 회의에 캐서린을 참여, 그녀의 재능이 빛날 기회를 준다. 마지막, 짧은 시간에 컴퓨터를 검산했지만 정작 이를 계산한 캐서린 앞에서 닫힌 문을 열어준 것도 부서장이었다.


부서에서 가장 지위가 높았던 이 두 사람에게는 재능에 대한 존중이 있을 뿐, 차별은 없었다. 반면 흑인 여성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할 법한 백인여성들의 태도는 냉담하고 방관자적이다. 이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이나 구조에 그 원인을 돌리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뒤로 물러선다. 시스템은, 그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핑계였던 거다 (된장, 내 얘기다. 시스템이 어쨌든 최소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연민은 가져야 옳다)


두 번째, 제 몫의 삶을 제대로 살려면 숨겨진 재능이 활약해야 한다.

#메리가 흑인에게 오픈되지 않은 대학의 강의를 듣기 위해 판사를 설득하는 장면. 사실 메리는 영화도입부에서 다소 가벼운 인물로 묘사된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자격을 체크하면서 지레 ‘흑인이니까’ 안 될 것이라고 투덜투덜하다가 친구들에게 지청구를 듣는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그녀는 판사가 겪었던 최초의 경험 (e.g. 집안 최초의 대학생 등)을 꼽으면서 파이오니어의 어려움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피부색을 바꿀 수는 없으니 부득이 이 대학에 들어가는 최초의 흑인이 될 수 밖에 없다며 도움을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판사가 내린 결정 중 앞으로 100년 후에도 기억될 판결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판사를 미소짓게 한다. 즉, 전략적 마인드가 메리의 의외의 재능이었던 것.


#또한 흑인 계산원그룹의 액팅 수퍼바이저인 도로시는 리더십과 기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정식 임명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밤에 IBM 컴퓨터를 몰래 익히고 프로그래밍을 공부, 계산원들을 교육시켜 월급자리를 지켜낸다. 그녀의 숨겨진 재능은 백인전용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훔칠 수 있는 과감함과, 미래를 읽어내는 매의 눈(비전)이었다.


나는 재능을 키우고 발휘함으로써 그 혜택을 세상에 되돌려주는 것이 개인의 삶에 대한 의무이자,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와 어느 지역, 어떤 인종과 계급으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각자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다르다. 만약 백인 남성이 이 세 여성과 같은 재능을 가졌더라면 그는 쉽게 나사에서 자리를 얻고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장애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 그의 삶은 평탄하고… 그렇다면 타인의 삶에 대한 연민을 갖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진화의 관점에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정말로 정교한 커스터마이징 작업이다.


나는, 도대체 어떤 목적을 갖고 이 삶을 설계했을까.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스스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거나 무언가 이상적인 것을 좇기 때문에, 오히려 삶을 충실히 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좀 생각해보게 된다. 도로시나 캐서린이 취미로 일을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백인여성의 필수 아이템인 ‘진주 목걸이’를 살 수 없을만큼’의 쥐꼬리만한 월급자리를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재능의 발휘는 그래서 오히려 현실과 착 달라붙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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