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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Oct 09. 2017

예민함을 사랑해주기

날 선 예민함이 꼭 둥글게 다듬어질 필요는 없다


EP1. 매력적이었던 어느 대리님의 퇴사


화장품 방판 스타트업 회사를 다닐 때 이야기이다.

코스메틱 BM은 대체적으로 여성 담당자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식품과 화장품 모두를 어설프게 했던 것을 계기로 이 세계에 발을 딛게 된 적이 있었다. 화장품을 조금 오래 업으로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과, 왜 남자는 BM이 될 수 없지 라는 흑백논리 사이에 빠져 있었으니 현실을 알아가는 데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코스메틱 팀에서 건강식품 라인업을 담당하게 된 관계로 막상 화장품 쪽 BM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외려 사람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고, 도울 수 있는 것은 알아서 돕는 위치가 되었을 뿐.

성별과 관계 없이 이 곳 또한 스타트업임에도 곧 정치와 파벌이라는 것이 생겨났고, 곧 내 맞은 편에 앉았던 분은 회사의 다양한 정치권력간에 꽉 끼여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회사에서나 나오는 같은 패턴이었다. 한 명의 개인이 뛰어난 창의력, 업무 역량, 에너지가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보이지 않는 손들에 휘둘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개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인 날 세우기 역시, 결론은 퇴사라는 끝으로 귀결되더라는 것.


정치를 먼저 시작한 회장과, 그 아래 고만고만한 삶을 살고 있는 또래집단이 휘둘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쩌면 둥글게 지내지 못하고 오로지 일직선으로 신념에 따라 행동하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하게 몸이 망가지며 말 그대로 산화하였던 것 같다. 같이 잘 모르고, 같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단지 좀 더 똑똑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참으로 오랜 시간 만에 마음에 꼭 두고 있었던 한 사람의 이성이기도 했다.

왜 그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인지를 잘 아는 삼각형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EP2. 그녀의 ASMR과 반려동물


"대리님을 좋아합니다."

"대리님이 좋아할 만큼 좋은 사람이 못 되요. 나는."

"좋아할 만큼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에요. 더 알고 싶고."


명확한 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는 알아갈 만큼의 시간은 충분히 주었던 것 같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겸허함을 전제로 하였다. 내가 그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낮선 시간이 공명하여 만난 그대의 많은 것을 한 번에 알고자 한다는 것은 자기만족의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인연의 빨간 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우주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던 찰나의 시간에서 아주 조금 알게 된 그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삶이 예민한 그는 쉽게 잠을 이루는 것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자신의 날이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는 것을 마음 속 깊이 포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것은 ASMR과 두 마리 어여쁜 강아지였고, 어느 정도의 술이었다. 이렇게 그의 일부를 표현한다면 대부분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성격' 이 어디가 반할 만큼 매력적이었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믿는 것으로 당당했고 주변을 예민하게 살펴 타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심지어 상대방이 이 행동이나 말을 하면 좋아하거나 싫어할 것 까지 예측 가능했던 섬세함. 그는 이 있는 그대로의 뾰족한 것들로 인해 둥글둥글함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무척이나 힘들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과 일상에서 겪은 그의 예민한 섬세함으로 인한 웃음, 슬픔, 다툼, 질책 모든 것에서는 둥글둥글한 것들이 갖지 못하는 진심이 늘 담겨 있었다. 내가 느낀 매력은 적당히 둥글게 살기 위한 말과 행동이 아닌, 바로 이 직진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취를 하는 그가 홀로 있을 시간에 청해 듣고는 했을 ASMR의 반복되는 고요함은 어쩌면 뾰족한 진심을 놓고

무던한 해석을 하는 소리들에 대한 도피처였을 것이다. 예뻐했던 반려동물들은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던, 그 자신이 반영된 페르소나가 아니었을 까.


삼각형이어서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당시의 그는,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원의 세계에서 그렇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모난 부분은 마음과 함께 몸도 깎아나가고 있었다.




동그라미. 원은 흔히 완전체라고 한다. 어디든 잘 어울릴 수 있고, 부딪혀도 깎여나가는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어떤 자극을 주어도 제 갈길을 평안하게도 잘 굴러가니까. 요즈음의 세상에서 둥글둥글한 사람들이 세상살이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인재로 여겨지는 것 또한 불편함과 마주하는 것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날 선 예민함을 갖춘 타인을 둥글게 깎으려는 것은 결국 나의 입맛에 타자를 맞추려는 것이지, 진정으로 상대방의 예민함이 어딘가에 적격하지 않아서만은 아닐 것 이다.


세상 사는 게 그러하기에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날 선 우리의 예민함을 스스로 더 많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혼밥, 혼술과 같이 고독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점차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인정 받고 있는 모습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충분한 자양분이 되는 것 같다. 더욱이 내가 보고 겪은 바로는 날 선 예민함을 갖춘 사람들의 특징은 '막상 예민하게 하면 제일 잘 할 관계의 정치를 힘들어한다' 라는 것이였다. 이는 곧 뾰족한 사람들의 관계맺음 자체가 순수하고 지극히 평범한 것을 원한다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둥글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타자와 자신 간에 어떠한 것을 교환함으로서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는 휴전의 상태와 같은 반면, 예민함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속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나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예민한 사람들일 수록 시대에 자취를 남길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도 많다고 하지 않는가.


둥글게 살아가라고 하는 말 들을, 오히려 내가 나답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말로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나 예민해서 타인의 슬픔과 기쁨, 생각, 주변 환경의 작은 변화까지 통찰할 수 있는 존재들이야 말로 둥글지 않은 것들을 둥글고 균형 잡히게 만들어 주는 가장 완전한 동그라미니까.


뾰족한 선을 가진 아름다운 원인 당신의 하루가 ASMR이 없어도, 누군가에게 꼭 위로를 받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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