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다이어리 #1. 10대 아이가 후줄근한 30대 동네 아저씨에게
10월 15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 양껏 게으른 점심.
눈 떠보니 낮 한시였다. 애초에 아침형 인간도 아니면서 '난 왜 이럴까' 하고 눈비비며 라면 하나 사러 슈퍼에 가던 찰나였다. 수염도 덥수룩, 옷가지는 후줄근, 머리는 산발이 된 상태로.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신경 안쓰고, 안 꾸민 상태가 제일 행복하고 편하다.
슈퍼에서 나와서 골목 어귀에서 동네 백수 형 아우라를 마음껏 발산하며 레스비에 담배 한 대를 말끔하게 피우며, 간 밤 내 매출은 0원인 반면 경쟁사 매출은 팍팍 올라간 것에 마음으로 궁시렁 거리던 찰나였다.
이제 막 중학생 티를 벗은 듯 한 아이들이 내 앞을 지나가며 한 마디 한다.
"야, 나는 왜 자꾸 지지 하고 생각하면 진짜 지던데? 그래서 진다는 생각 자체를 안해!"
"병신, 왜 자꾸 지는지를 알아야 이길거 아냐"
나만 슬로우비디오처럼 멈춰있었고, 또렷하게 들은 말은 저 3마디가 전부였지만, 전설속의 존재 여자친구에게 커다란 위안을 받은 듯 마음이 따끈따끈해 진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항상 최고라는 중2병이 이렇게 멋진 것인 줄 처음 알았다.
고마워 아이들아!
FROM. 동네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