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 책상 위 고양이 Jan 06. 2021

자기소개서 속의 자기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은 언제나 참 괴로운 과정이다. 자신감이나 확신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동안 애써 피하며 바라보지 않던 나를 이 기간에는 강제로 마주해야 한다.


"너 대체 그동안 뭐 했니?"


2020년에도 어김없이 여러 자기소개서를 썼다. 물론 PD 직군을 뽑는 방송사가 그리 많지 않으니 사기업에 지원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소개서의 수가 많지는 않다. 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니까. 자기소개서가 잘 안 써질 때마다 드는 생각은 "너 대체 그동안 뭐 했니?"다. 물론 이것이 뒤늦은 후회이며 나쁜 생각의 습관이란 것은 알지만 습관이 쉽게 바뀌면 습관이겠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도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나의 모습도 싫어 어느새 시무룩해진다. 2020년에는 자기소개 영상까지 요구하는 곳들도 있어서 더 힘든 시간이었다. 꼴 보기 싫은 내 모습을 화면으로까지 보고 나니 정신은 더욱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때때로 절박해진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조급해진다. 지금도 늦었다고 평가받는 나에게 과연 2021년의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그만큼의 실력을 쌓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커진다. 하지만 이는 냉정하게 돌아보면 내 안위에 대한 절박함이다. 내가 바라보는 삶의 가치를 절박하게 추구하는 것이라면 비관하는 대신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을 쓰고 있을 것이다.



증거라고 할만한 것이 있다. 역설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기간에 PD를 지망하는 나는 PD와 가장 멀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작문을 쓰려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책이나 영화에도 관심이 줄어든다. 어떤 영상을 만들까 생각하는 여유도 없어진다. 이것이 증거라면 증거다. 사람에 관심을 갖고 세상에 대해 궁금하고 그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PD.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침착되어 있을 때 관심사는 ‘나’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평가자가 바라볼 '나'이다. 내가 잘 되는 것, 서류 합격 여부에만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변 사람까지 알게 모르게 괴롭히게 된다. 불안하고, 자신이 없고, 절박하여 신뢰가 있는 친구 몇 명에게 용기를 끌어 모아 자소서 글에 대해 피드백을 청한다. 하지만 사실은 안다. 자기소개서 피드백을 부탁할 때 때때로 사람들은 ‘답정너’가 된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자소서 문항 글을 나쁘게 평가하면 섭섭하고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자소서 문항 글을 좋게 평가하면 믿지 않는다. 이와 같은 모습을 친구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건방지게 안타까워한다! '이 쫘식이! 너도 똑같으면서!'



그래도 그런 친구의 모습에 비친 나를 발견해서인지 때때로 정신을 차린다. ‘그래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이미 가진 약점을 부풀려봤자, 안 될 이유를 하이에나처럼 찾아봤자 자기 함정의 늪에 빠질 뿐이다. 



그럴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뇐다. 나는 이 부사를 참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나의 현재 모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아간다. 문득 마주하게 된 내가 너무 못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보면 봐줄 만한 구석이 있다. 나이가 많다.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오래 산(?) 덕분에 이런 점은 강점으로 지니고 있다. 나를 마주하고 평가하게 되는 이 시기에는 더 이상 내가 바꿀 수 없는 요소들이 나를 괴롭히려 한다. 남과 비교하면 그 괴로움은 배가 된다. 이 못된 습관을 벗어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떠올리는 것이다.



여러 생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스쳐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겠지. 부족함은 그 깊이가 끝이 없고 못난 점은 세다 보면 산처럼 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나는 내가 안 될 이유에도 불구하고 될 이유를 찾아야 한다. 서류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PD처럼 살 수는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나 비루함을 느끼고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이는 희망사항이 아닌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이 와버린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예쁜 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