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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책상 위 고양이 Jan 27. 2021

죽는 게 낫지 않아요?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초등학생 과외를 하다 보면 종종 짓궂은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아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선생님인 ‘나’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험은 특히 만남의 초반부에 이루어지는데 사실 꽤 긴장된 순간이다. 마치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당신이 내 선생님으로서 자격이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시험의 방식도 다양하다. 자신이 보기에 매우 어려워 보이는 수학 문제를 가지고 와서 풀어보라는 아이도 있고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아이도 있다.(예를 들어 ‘아이는 어떻게 생겨요’라든지) 이때 아이들이 관심 있는 건 문제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내가 정답을 알고 있는지 여부와 그에 대처하는 나의 반응이다.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어디선가 들어서 대강 알고 있는 상태다. 



 다행히도 나는 이 꼬마 면접관들의 면접을 나름대로 잘 헤쳐왔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최후의 수단인 '스마트폰'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잘 모르는 질문을 해도 당황하지 않고 같이 생각해보자며 슬쩍 스마트폰을 활용한 덕분에 나는 선생님으로서 위엄을 지켜 올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도 정현의 질문은 꽤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선생님 죽으면 편할 것 같아요. 죽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잖아요.” 


 이틀 전에는 자신이 연애 고수라며 나에게 연애를 몇 번 해봤냐며 까불던 녀석이 그 날은 그와는 온도차가 큰 질문을 던진 것이다. 혹시나 힘든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정현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 일도 없단다. 해맑은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그런 듯했다. 정현은 평소에도 이런저런 질문을 잘하는 아이였다. 그 질문들은 보통 공부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었지만. 죽음에 대해 말하는 이 어린 소크라테스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어쩌면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지 않은 이유를 찾아야 했다. "죽을 때 너무 아프지 않을까?"라고 말하니 그 순간만 참으면 된단다. "주위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하니 "그러면 저는 엄마 아빠를 위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한다. "너 공부하기 싫어서 그렇지?"라고 물으니 약간 당황하지만 말 돌리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결국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날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최후의 필살기인 스마트폰은 꺼내지도 않았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쓸모가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현의 질문은 처음 듣는 질문은 아니었다. 어릴 적, 나도 자라면서 때때로 진지하게 왜 살아야 하는지 자문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내가 어떠한 답을 내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니 답을 내리기는 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느새 어른이 되면서 떠올리고 잊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아이일 때 품었던 수많은 질문과 답은 풍화되어 사라지기도, 세월의 문틈에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 질문 중 하나를 정현이 다시 던져준 것이다. 문제를 내는 것은 선생님의 역할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정현은 내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에게 실망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어하며 수많은 질문을 적극적으로 던졌다. 어쩌면 선생님의 역할은 답을 내려주기보다 아이들의 질문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같이 고민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름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아이들 질문에 답을 맞혔기 때문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음번에는 시원하게 말해야겠다. 

"사실 선생님도 잘 몰라!" 

그리고 물어봐야겠다. 

"정현이는 어떻게 생각해?"

정현은 분명 진지하고 친절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 줄 것이다. 



물론 그사이 아이는 던졌던 질문을 잊어버리고 다른 질문을 새로이 가지고 올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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