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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정원 May 13. 2019

분재인문학 이야기 1

[ 성주엽 ] 생각하는 정원 2020년 1월 출간

이 책은 분재를 만들기 위한 기술서가 아닙니다. 분재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사유하고 우리 주변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책입니다. 나무를 물상화物像化하여 그 내면의 변화와 생명의 약동, 나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깨달음을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일정한 원칙과 주제에 따라 그간 써두었던 글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래서 ‘분재 인문학’이라는 조금 거창한 제목을 달아 니다. 인문人文은 ‘사람의 무늬’라 말하기도 합니다. 나이테와 껍질, 순과 잎, 그루터기에 그려진 나무의 무늬를 읽고 거기에 사람의 무늬를 덧대보는 작업이라고 느껴져 그렇게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분재에 대해 너무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나무를 못살게 괴롭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시간 많고 한가한 사람들이나 취미 삼아 하는 작업이라는 편견들이 많았습니다.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을 때는 그러한 무지와 억측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 손님들을 붙잡고 설명해 드리곤 습니다. 그럴 때마다 인식의 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좌절이 밀려왔습니다. 분재를 만들지는 못해도 최소한 누구나 나무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정보와 내용이라도 따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실이 여러분이 들고 계신 바로 이 책입니다.     


‘나 같은 촌에 파묻혀 사는 나무꾼이 이런 책을 써도 되나?’ 막상 책을 낸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저 스스로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껴 분재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어 보았지만, 대개 학문적으로만 표현된 것들로서 마음에 다가오는 글귀는 거의 없었습니다. 차라리 원장님께서 가끔씩 화두처럼 던지시는 말씀을 받아 곰곰이 되새기며 더 깊은 의미들을 간취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분재와 관련된 화두들을 하나씩 붙잡고 끈질기게 매달리고 많은 궁리와 사색을 통해 생각들을 온축蘊蓄시켜 나갔습니다. 오랫동안 나무를 관찰하며 느꼈던 점, 나무의 이름을 가지고 표현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생각하고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나무의 잎과 가지 그리고 줄기와 뿌리, 꽃과 열매 등의 생태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응용학문에 앞서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이 발달해야 그 나라가 튼튼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인문과 문화 예술이 발달하려면 그 나라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으뜸은 사람이 아니고 나무입니다. 나무를 알면 감히 자연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종과 개성에 따라, 환경과 방향에 따라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나무야말로 사람에게 많은 메시지를 줍니다. 제가 알기로 분재를 통해 인생과 철학, 예술을 논하는 책은 몇 권 없습니다. 분재를 기르는 것은 단지 나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사람의 마음에 의지를 강하게 하고 덕성을 기르는 등 큰 유익을 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평소 나무로부터 얻은 깨달음은 일정한 주제를 갖고 이 책을 정리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거목들과 한 시간 이상 대화하고 교감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메모하게 되었고 주요 인사들이 정원을 방문할 때 안내 요청을 받으면 이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해드리곤 했습니다. 안내를 받던 분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중량의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었고 도리어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가르침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안내를 받은 손님들이“감명받았다!”고 말씀해 주실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재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한다.”고 귀띔해 주실 때에는 말할 수 없는 감격과 보람으로 일렁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기반은 필자의 부친이자 생각하는 정원의 설립자이신 성범영 원장님의 선구적인 생각과 발자취를 따라 그 의미를 정리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이해하는 심정으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바쳐 세계 제일의 분재정원을 조성하셨고, 아들인 필자는 부족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제 몫을 하려고 발버둥 치던 아들이 용감하게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3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나무 밖에 모르는 나무꾼이 넋두리를 늘어놓은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나무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이것으로써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성취감보다는 나무꾼의 소박한 소임 중 일부를 했다는 안도감이 먼저 듭니다. 하나님이 나무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 은혜를 내게 주심을 감사드리고, 그 사명을 많은 분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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