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문화가 거의 없던 시절 2007년 상호를 생각하는 정원으로 바꾸고 열대식물을 빼내고 한국 수종들로 정원을 보완 확장했다.
가든은 고기 구워 먹는 곳 아닌가, 우리 산에 있는 나무들 캐다 놓았다는 분도, 숲이 좋은데 나무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1960년대에 이런 황무지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부친은 1968년 제주도 중산간의 황무지 개간을 시작하며 옆에 붙어있는 토지들을 붙이며 1만 3천여 평의 토지를 개간하여 쉴 만한 곳을 만들었다. 이를 본 단체장이 방문하여 교통이 안 좋으니 대토해 줄 테니 옮기라는 권유도 좋은 꽃과 나무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날아온다는 이야기를 하며 저지리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지켜왔다.
참 많은오해와 부딪쳐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던 길, 새로운 길이었기에
세상의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다.
지금도 대중의 이해가 부족한 일을 하며 모가 난 부분에 정을 맞으며회사를 유지하려고 몸부림쳤던 시간이었다.
나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스로 큐레이터가 되었다. 나무를 관찰하고 책을 찾아보고 힘들 때 나무와 대화하며 글을 썼다. 회사를 알리기 위해 전국 여행사의 문을 두두리며 세일즈맨이 되기도 했다. 수목과 시설투자는 끝없이 들어가 은행에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철 모르는 나이에 무조건 부모님을 따라왔던 길, 이제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는 나이가 되었다. 정원이 올해 개원한 지 30년이란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