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텅 빈 채로 두었다면.

웹툰 <흙수저를 위한 나라는 없다> 비판

by 일흔의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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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를 위한 나라는 없다>. 2020년 작. 이 만화가 나타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에 대해 비판한다는 것은 다소 비겁하게 느껴질 수 있는 행동이고, 실제로도 옹졸한 행동이 맞다. 그럼에도 내가 이제서야 이 만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5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내가 '왜' 이 만화를 그때나 지금이나 탐탁지 않게 보는지에 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잘 만들어진 작품이며, 작가 역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분명 작가는 삶에서 주어진 시련과 고난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여 인생의 새로운 부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훌륭하고 대단한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당장 구글에 이 만화 제목을 검색하고 나서 댓글 창을 보면 거의 9할에 가깝게 채워진 찬사와 칭찬의 댓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댓글을 달 수 없었다. 내가 이 만화를 보고 느낀 감정은 불쾌감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불쾌함이, 댓글 창의 나머지 1할을 채운 댓글들이 말하듯이, 이 만화의 작가가 진짜 흙수저 생활을 안 해보고 힘들었다고 떠들어대는 '위선자'라서, 이 만화가 전형적인 자기 자랑하는 '영포티'의 이야기라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당시 댓글 창에 아무런 말도 적지 못한 채 찜찜한 채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 나는 비로소 말할 수 있다. 내가 이 만화를 보며 느낀 불쾌함의 정체는 바로 텅 비어도 아름다울 계곡에 마구잡이로 지어지는 평상을 볼 때 느껴지는, 그런 불쾌함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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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작가가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붕괴한 가정, 처참한 주변 환경.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어떻게든 '지역에서 그나마 알아주는(작중 표현이다)' 대학에 들어가 이후 '한 굴지의 대기업 본사(역시 작중 표현이다)'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만 그려냈다면 나는 굳이 이 만화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일종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성공 신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자체로는 불쾌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꽤 괜찮은 이야기다. 좋은 예술은 우선 관객의 내면세계를 깨부숴야 한다. 그리고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누리고 있던 많은 것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았음을, 자신이 누린 삶이 당연했다는 '믿음'을 깨부숴주는 이런 이야기들은, 예술의 제1조건을 적절히 충족시킨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만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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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기존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 작가는 "서울 출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끼고 돌며 잘 먹고 잘 사는스노브들"이라는 '믿음'을 채워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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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리필 고깃집은 막입들이나 대충 배 채우려고 가는 곳이고, 선어회인지 활어회인지, 이게 좋은 사케인지 나쁜 사케인지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한다."는 '믿음'을 채워 넣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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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비싼 시계나 좋은 차, 명품 같은 것들에는 관심 없는 사람이고, 그것이 멋진 것이다"라는 '믿음'을 채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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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사람들의 내면에 충격을 주었다. '흙수저'의 삶의 현실과 비참했던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독자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것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 내면, 그렇게 그동안 자신의 믿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어 텅 비게 된 독자들의 내면에, 작가는 어떠한 새롭고 건설적인 믿음 대신, '자기 삶'을 채워 넣으려 한다. 내가 이렇게 잘 산다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한심하다고, 그러므로 내 삶은 옳다고.


굳이 그랬어야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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