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비일지 몰라
눈 뗄 수 없으니
산소나
빛,
H²O-
물일 수도 있지
어쩌면 중력 같은 거
어쩌면
은빛 패트로누스나
장막
아니, 아니다
글자로
강. 민. 진.
네가
이름 쓸 때 잠깐
휘리릭
볼만
뺨만-
스치고 갈게
나는 늘 뭔가에 빠져 사는 사람이다. 음악, 드라마, 영화로 한 시절을 기억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특히 나의 이십 대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끝으로 시리즈가 막을 내리자, 여름휴가에도 크리스마스에도 더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유년기가 끝난 듯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해리 포터와 함께 어른이 된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면 한없이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스무 살 무렵,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한창 유행이었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대출해 줬으면서도 말이다. 책이 너무 낡고 너덜너덜해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찾은 책이었을 텐데, 그때 읽었더라면 나의 20대가 조금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내가 마법 세계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뒤,『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영화로 개봉했을 때다. 영화에 꽂히면 원작을 찾아 읽는 편인데, 처음 책으로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영화도 좋았지만, 책이 주는 깊이와 감동은 그 몇 배였다. 이후 나는 해리 포터 덕후가 되었다.
해리 포터의 부모는 한 살 된 해리를 살리려다 살해당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 대목을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나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고 말았다. 내 안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돌쟁이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슬픔이 고통스럽게 밀고 들어왔다. 20대 때와 다르게 읽히는 것이다.
"패트로누스란 말하자면 너와 디멘터 사이에서 디멘터를 물리치는 방패 역할을 하는 수호자란다."
해리는 문득 커다란 곤봉을 든 해그리드만 한 형상 뒤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떠올렸다. 루핀 교수가 계속 설명했다.
"패트로누스란 일종의 선한 힘이라고 할 수 잇지. 디멘터가 흡수해 버리는 희망과 행복과 살고자 하는 욕구 같은 것들을 합친 거야……. 하지만 이것은 진짜 인간처럼 절망을 느끼지 못한단다. 그래서 디멘터들이 해를 입히지 못하지.
(중략)
"그러면 어떻게 불러내죠?"
"주문으로 불러내지. 물론. 하지만 네가 아주 행복했던 딱 한 가지 기억에 몰두할 때에만 효과가 있단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336쪽
해리는 부모 없이 자랐지만, 어려운 순간마다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보호받는다. 그것은 기억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패트로누스처럼 물리적(?) 형체를 띠고 등장하기도 한다. 엄마가 된 후 나는 그런 장면들에 눈이 붙들리곤 했다.
나는 원체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몽상가라는 말을 듣지만 이십 대에는 더 심했다. 첫 직장에서 보험 가입을 권유하던 선배에게 “암 안 걸릴 건데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일종의 농담이었지만 그만큼 현실에 무감각했다. 근거 없는 낙관 속에서, 세상은 온통 초록빛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집 앞에 누군가 서있기만 해도 불안하다. 대부분 담배를 피우거나 수다를 떠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나는 긴장하고 경계한다. 세상은 더 이상 초록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기대와 가능성으로 가득 찼던 세상은 지나갔고, 이제는 장애를 가진 내 아이가 살아야 할 불확실한 세상 앞에 서 있다. 언젠가 내가 먼저 떠나야 한다면…. 그 가정 하나로 극심한 불안에 시달린다. 그 답을 찾지 못해 둘째를 낳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도 늘 흔들렸다.
발달 장애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이십 대 중반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감각 예민성과 충동성 때문에 사고가 많다고 했다. 그 말을 계기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를 더 사랑하자고 결심했다. 어느 날부터는 백이십까지 살다가 팔십이 된 아이와 함께 가겠다는 목표가 생겼는데 그 말을 할 때마다 남편에게 혼이 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온전히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그 무렵『보건 교사 안은영』을 읽다가 또 눈이 번쩍 뜨였다.
“안은영은 아까의 한문 선생을 보호하고 있던 거대한 에너지 장막에 감탄하고 있었다. 보건실에만 박혀 있다 보니, 가까운 데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 그 선생님을 매우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서도 강력한 의지를 남긴 게 틀림없었다. 그런 보호를 받고 있는데 왜 다리를 다쳤지? 희한한 일이다. 친해지기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만약의 사태가 심각해지면 도움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걸어다니는 행운의 부적이나 다름없었다. 탐났다.”
- 『보건교사 안은영』 27쪽
‘거대한 에너지 장막. 매우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서도 남긴 강력한 의지’라는 상상에 전율했다. 나도 그렇게 내 아이 곁에 남고 싶었다. 주술이나 흑마법이 그렇게 탄생했을 거라는 상상도 했다. 가끔 우리 아이가 사랑받은 태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어서도 남는 보호막이라는 게 현실에 있다면 그런 형태일까.『보건교사 안은영』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간을 넘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가끔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차별과 혐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세계 곳곳에 매일 같이 무너지는 삶들이 있다. 책 속 세계도 다르지 않다. 분열과 상실, 두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 안에서 현실을 살아갈 단서를 발견한다. 그것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덕분에 나는 해리를, 안은영을 만날 수 있었다. 불안과 우울을 이해했고,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도 배웠다. 책은 내게 호그와트 입학 편지나 마법 같은 보호 장막을 주진 않지만, 삶을 버티는 힘을 준다. 마음 깊은 곳의 소망과 외면할 수 없는 나의 진심을 깨닫게 해준다. 아마도 나는 살아있는 동안 내내 책으로부터 힘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책의 언저리에서 삶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