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유보

by 강여자




"제가 이 친구의 첫 번째 독자거든요."



수능을 앞둔 가을, 한 주가 멀다 하고 찾아와 독립출판물만 골라 사 가던 소년이 말했다. 짝꿍처럼 함께 와 책 이야기 주고받던 친구가 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 후였다. 열아홉 두 청춘이 글을 쓰고 나누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책을 만들고 있다니! 마흔이 넘어서야 진지하게 글 쓸 용기를 낸 나에겐 놀라운 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의 열여덟이 떠올랐다. 신문에서 사설을 오리고 책만 읽던 내게, 그런 것만 해서 대학 갈 수 있을 것 같냐고 조소했던 담임의 말이 아직도 떠오르는 걸 보면 그 말이 꽤나 뼈를 때렸던 모양이다. 열아홉 살 때였다. 국문과에 가고 싶다는 말에 담임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공계열 학과에도 원서를 넣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대학에 가면 하기 싫은 공부는 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었다.



라디오 키드였던 나는 고교 시절 특히 심야 라디오에 열광했다. 신해철 DJ의 방송을 오래 들었는데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내가 쫓던 말은 늘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 시절 또 퐁당 빠졌던 이가 있는데 바로 한비야 작가다. 그는 다시 만날 땐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단 말로 인사 하자 해서 나를 설레게 했다. 그래서인 줄 알았다. 내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가 신념처럼 자리 잡은 것은.



내 이름은 김지영이다. 80년대 여성의 이름 중 가장 많다는 이유로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화에서 공유 배우가 '지영아, 지영아' 할 때마다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흔하다는 도장이 찍힌 것 같아 이름이 조금 지루해졌다. 필명으로는 낯선 이름이 좋을 것 같아 엄마 이름을 빌리기로 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너무나 익숙한 대답을 하셨다.



"도둑질만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어릴 때 입은 옷이 창피하다거나, 누가 쳐다봐서 싫다거나 투덜거리면 엄마는 늘 '도둑질했냐, 뭣이 창피해? 남들 신경 쓰지 말고,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셨다. 그 말이 투박하고 또 너무 일상적이어서 흘려들었는데, 지금 보니 나는 그 누구보다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오랫동안 내가 붙잡고 늘어진 한 마디는 엄마의 말이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요령 없던 젊은 날의 나는 영화판 발치를 기웃대다 시들었다. 뭔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후에 글을 쓰겠다고 선회했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향하는 길목이 그렇게 좁을 줄은 몰랐다.



엄마가 되었다. 손 안의 생명체는 너무나 작고, 또 완전히 나를 의지했다. 그토록 맹목적인 사랑을 받은 적이 있나 싶은 시간이었다. 아이 기르는 일은 힘들었지만 어느 만큼만 키워놓으면 내 길을 찾아갈 여유가 생기겠지 했다. 하지만 아이 하나 잘 기르는 것이 어디 쉽던가. 아이는 나의 일부만 원하지 않았다. 나의 전부를 원했다.



그러다 아이에게 장애 진단이 내려졌다. 처음 얼마간은 남보다 조금 더 열심히 키우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두 돌에서 세 돌 사이가 ’ 골든 타임‘이라고 했다. 치료에 매달렸다. 치료로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니었다.



평생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될 거라고 했다. 여섯 살이 넘자 구어 습득은 어려울 거라 했다. 열 살이 넘자 한글도 배우기 힘들 거라고 했다. 같은 연령의 아이들과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스무 살, 서른 살. 아이의 미래도 나의 미래도 그려지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 나는 무척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 역시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절망은 바람이 꺾이는 거라지만 뒤집으면 바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나는 분명한 소망이 있었으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저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희망만 있으면 되었다. 삶이 단순해졌다. 하루 동안 해야 할 일 하나, 하고 싶은 일 하나를 하자 마음먹었다. 오늘 해야 할 일 하나를 해내면, 나머지는 몽땅 하고 싶은 일로 채웠을지도 모른다. 내 삶에서 중요한 건 내일 살아낼 힘을 오늘 만들어 내는 일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할 수 있을 땐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뒀던 꿈이,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간절하게 떠올랐다.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슬램덩크』에서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두게 된 남학생의 그 고백이 아이를 재우는 밤 가끔 떠올랐다.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방법을 몰라 폭탄이 되어가던 그처럼 나도 방황하고 있었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고 믿었던 많은 일들이 실은 모두 나의 선택임을 깨달았다.



평범한 아이를 길러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충분할 리 없다.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고, 그래서 '초등학교만 보내면, 대학교만 보내면' 같은 생각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평생 아이와 함께할 것이므로 당장 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 양육을 병행해야 했으므로 잠을 좀 포기해야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 때문에, 남편 때문에 삶을 유보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를, 나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이다.



나는 인생 유보를 멈추기로 했다.



책방 루시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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