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질문도 아닌

by 강여자

편세권 신학



어제 받은 질문은

잔뜩 아슬해


팬티 바람

새벽 마실에


보라 얼굴로 뛰쳐 나서면


CU

테이블 아래

통통한 종아리


편세권 입주는 신의 한 수

하느님 감사합니다

편세권에 터 잡게 해주셔서요


태연히 자리 잡고

사탕 까먹는


싱글벙글 네 얼굴

초초초조 알바 얼굴

내 얼굴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불가지론 제 엄마가

기어이 신을 찾게 하니


살면서 품은 질문은 모두

어영부영

흘러 갔건만


너는 왜 말하지 않을까 너는 왜 날 보지 않을까 너는 왜 다를까

너는 왜— 너는너는


너는 내가 받은 달큰한 질문

너에게 나는, 그 어떤

질문일까




아이는 혼자 깬 아침이면 살금살금 1층으로 내려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낸다. 책상에 앉아 태블릿으로 영상도 잠깐 보고, 냉장고를 뒤져 요기도 하고, 넘치는 장난감을 요리조리 뒤지며 논다. 아빠가 숨겨놓은 우유 쏟기 놀이도 하고 엄마 화장품으로 소파 화장도 한다. 안 되는 일인 것을 잘 알아서 오히려 손이 빨라진다.


엄마인 내 입장에는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일은 하지 않고 또 혼자 집밖에 나가지는 않아서 내버려두었다. 엄마 아빠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움직여 놓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아이가 혼자 현관문을 열고 외출을 감행한 것이다.



그날 따라 이상하게 눈이 번쩍 뜨였다. 아이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뭔가 고요했다. 설마, 하며 내려가는데 정말 인기척이 없다. 아무거나 꿰어 입고 일단 달렸다. 전날 밤 가자고 조르던 아이스크림 집이 생각났다. 그런데 아니었다.



머리가 하애져서 도로를 따라 미친듯이 뛰었다. 이쯤 되면 보여야 하는데…. 이성이 돌아오는지 순간 '반대쪽으로 갔으면 어쩌지' 두려워졌다. 도로를 휙휙 둘러보다 다시 반대쪽으로 뛰는데 집앞 편의점 안에 동통한 종아리가 보였다. 안도하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매장에 들어서니 아이가 테이블에 앉아 있고, 이미 까먹은 사탕과 포장을 뜯는 중인 장난감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알바생이 난감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이라 해야할지 초조한 사람은 그녀였고 아이는 태연해 웃펐다. 그녀에겐 미안했지만 내 눈에는 똑같이 아이처럼 보이는 그 순한 표정을 보니,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무서운 사장님을 만나 험한 욕이라도 듣고 울다 뛰쳐나갔으면, 그러다 사고라도 났으면 어쩌나'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집에서 나오면 몇 발짝 떼지 않아도 편의점이 보이는데 뭐에 홀린 듯이 우회전부터 하고 만 것이다. 어쨌든 아이가 좋아하는 편의점이 30m 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 일을 계기로 현관문 안쪽에 번호키를 달았다.



그뿐이면 좋았겠지면 아이가 자라는지 요즘 부쩍 사고가 잦다. 며칠 전 아이를 재운다는 게 내가 먼저 잠든 밤이 있다. 아이는 잠이 오지 않으면 엄마가 깨지 않게 살살 일어나 논다. 이번에도 '일어나야 되는데, 재워야 되는데' 생각을 하는데 우당탕 뭔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일어나 뛰는데 또 커다랗게 '쿵' 하는 것이다.



가 보니 묵직한 고무나무 책장이 쓰러져 있고 그 앞에 아이가 벌벌 떨며 주저 앉아 있다. 기절할 듯 달려가 몸을 더듬어 보니 왼쪽 정강이에 아주 조금 긁힌 자국만 있다. 떠는 아이를 데려다 앉혀놓고 안아주고 쓸어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그 큰 게 그냥 넘어졌을 리가 있나. 아이가 책장에 올라가려고 잡아당겼을 확률이 높은데 정말 그랬다면 밑에 깔렸을 것이다. 어떻게 딱 아이 무릎 앞에 책장이 떨어져 있었던 걸까. 더는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는 위치에 앉아 있었는데 무슨 일일까. 정말 신이 있어 아이를 살펴 준 것일까.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나는 방 정리 중 임시로 세워둔 책장이 혼자 넘어진 거 같다 했지만, 남편은 절대 그럴리 없다며 아이가 잡아당기고 잘 피한 거라 단정했다. 엄마 아빠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말을 하지 않으니 진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책장을 단단히 고정한 남편이 건넨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책장 앞에 끊어진 빨래줄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쓰려고 산 이 빨래줄은 암벽등반 때 쓰는 로프처럼 땡땡해 '이렇게까지 튼튼할 일이야?' 했었는데 여행 후에는 방안에 걸어두고 가끔 사용해왔다. 그 위치가 딱 책장 앞 50cm 거리였다. 그 질긴 고무줄이 잠깐 아이가 비킬 딱 그만큼의 시간을 벌어준 셈이었다.



신이 아이를 구한 줄 알았더니, 빨래줄 걸어달라 한 엄마와 튼튼하게 잘 걸어준 아빠가 아이를 구한 셈이다. 아니, 그렇다고 거기 신이 없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불가지론자인 나는 누구인지는 모르겠고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만 열 살,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동시에 가진 아이는 커다란 질문인 채로 나에게 왔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어떤 질문이건 나날이 상관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아이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내게는 아이의 따뜻한 감촉만이 실재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만 같은 그런 아침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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