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 데 있죠."
말을 뱉고 알았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글로 만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글을 읽으면 가슴이 뛰고, 못 만나면 아련하고, 오래 못 보면 마음이 서늘해지는 이 감정을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부를까.
글로 만난 이의 진심을 알 수 있겠느냐 또 묻는다면,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알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 진실이 아니었다 밝혀진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까지 의심하며 사는 일은 가능할 리 없다고도.
한비야 씨의 글에 '사기'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붙인 악플이 돌았을 때 나는 물론 그 말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를 사랑해서만은 아니었다. 이의를 제기하던 문장에 악의가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책을 백 번 가까이 읽은 독자였고 그래서 흔들리지 않았다. 평소에도 적의가 분명히 드러나는 말과 글은 경계하는 편이다. 할 수 있는 말들은 수긍도 했지만 의도가 의심되는 말들은 걸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유명세란 그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며칠 전, 몇 년 만에 그 사건이 다시 언급되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 나만 진실을 몰랐던 걸까 싶어 잠시 흔들렸다. 다행히 찾아보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밝혀진 새로운 근거 같은 건 없었다. 그 일을 겪으며 그의 책 제목이 떠올랐고, 깨달았다. 그건, 사랑이었다. 때마침 그의 신작 소식도 들렸다. 마지막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기뻤던 건, 그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지지 말아야지, 두근대는 가슴으로 생각했었다.
한비야 작가보다 더 이전에, 더 사랑한 이가 있다. 빨강 머리 앤이다. 그를 만나기 전에 <톰 소여의 모험>과 <키다리 아저씨>를 완전히 빠져들어 몇십 번씩 읽었지만 그건 또 다른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첫사랑은 앤이라고 말한다. 앞의 작품들이 서사가 좋아 읽었다면, 앤은 캐릭터를 좋아했고 심지어 동일시했다.
매슈 아저씨, 정말 멋진 아침 아니에요? 이 세상은 하느님이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상상해 낸 것 같아요. 저 나무들은 제가 입김을 불면 날아갈 것 같아요. 하아~ 저는 서리가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게 기뻐요. 해먼드 아주머니가 쌍둥이를 세 번 낳은 건 결국 저한테 좋은 일이었어요. 안 그랬으면 미니 메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아주머니가 자꾸 쌍둥이를 낳는다고 화를 냈던 게 미안해요.
이런 문장을 읽으며 피식 웃는 건, 내가 한 말 같아서다. 앤을 읽으며 앤처럼 생각하게 된 건지, 아니면 원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 친구가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만 전학을 세 번 했기 때문이다. 낯을 많이 가렸고, 상급 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친구들과 학교가 갈라졌다. 예외 없이 늘 그랬다. 새 학기 첫날은 항상 혼자였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 보기, 혼자 여행하기, 혼자 바다 수영하기까지 20대에 이미 다 해봤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편이 맞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냥 나에겐 언제나 책이 있었다. 도서관만 있으면 어디서든 혼자 시작할 수 있었다. 글을 읽기 시작한 후부터 늘 그랬다. 아직 도서관이 없는 동네에 살아본 적은 없어서 다 괜찮았다. 책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 앤, 고등학교 때 한비야 작가를 사랑했고, 20대엔 장영희 교수를, 30대엔 임경선 작가를, 요즘은 은유 작가를 좋아한다. 사랑했다기보다는 좋아했고, 때로 존경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는 아마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한동안 살았던 또 다른 세계도 있다. 해리 포터로 대표되는 마법의 세계. 그곳은 뭐랄까, 겨울이 되면 잠깐 다녀오는 버들 도령의 동굴 같은 장소다.
아마 '책방 루시'라는 작은 공간에 내가 쌓아 올린 건, 내가 사랑해 온 책의 세계 자체일 것이다. 조금 허술하지만 내게는 흔들림 없는 사랑의 세계. 나는 매일 그 세계를 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