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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훈 Jul 03. 2024

마라톤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달리지 않는 사람이 달리는 기적을 위하여

2017년 12월 초 그해 가을 호스트로 주관했던 스포츠의학 관련 세미나에 강사로 참석한 분들을 모시고 감사와 송년회를 겸한 자리를 마련했다. 6명이 모였고, 세 명은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이었다. 서로들 바쁜 처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오랜만에 일정을 조율하여 어렵게 잡은 모임이다. 


모두 반가운 얼굴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모인 분들은 수년 동안 스포츠의학과 관련된 일로 관계를 맺어온 분들이었다. 세미나를 진행하며 강사로 참여한 한 의사가 마라톤을 10여 회 완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내 최고 명문의대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는 분이다. 


모범생으로 공부만 한 줄 알았던 그가 마라톤 완주를 그것도 10차례 이상 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부러움과 함께 체육 전공자로서 왠지 작고 초라해지는 속내를 숨겼다. 하나 나도 규칙적인 운동을 몸소 실천하고자 이즈음 제자리 걷기로 시작한 몸짓을 1시간 또는 8~10km 정도 달리기까지 상당히 발전시킨 상황이었다.


“마라톤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참 대단하십니다!” “저도 조금씩 걷다 뛰다 하던 것이 10km 정도까지 거리가 늘어 즐겁게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세요? 그러면 내년 3월 동마(동아마라톤) 같이 뛰시죠?”


“네? 마라톤이요? 풀코스를요? 뛰다 죽기 싫어요. 이제 겨우 10km 뜁니다. 그것도 남들이 보면 뛰는지 걷는지 모를 스피드로요...”


“10km를 규칙적으로 뛰셨으면 풀코스 완주하실 수 있어요. 제가 같이 뛰어 드릴게요!”


순간 여러 감정과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겁부터 났다. 거절하기도 쪽팔렸다. 저 사람은 공부만 했을 것 같은 의사, 나는 운동만 했을 것 같은 체대교수이다. 정말 뛸 수 있을까? 중도 포기하면 망신당할 텐데. 그래도 완주를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한 미소와 함께 골인하는 풀코스 마라톤 완주자의 피날레 장면을 보며 부러움을 넘어 경외심을 갖는 건 나뿐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평생 내 얘기가 될 거란 상상은 꿈에도 한적 없다.


맞다! 이전에도 마라톤을 완주한 한 여성의 이야기에 놀란 적이 있다. 영어 회화학원을 한동안 다녔는데 미국에서 온 젊은 여자선생님이 본토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했었다. 이때는 식물처럼 살던 때라 "저 여자 무서운 여자네" 하면서도 무늬만 체육전공자인 나는 그 젊고 왜소한 여자 선생님에게 영어보다 달리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 3회, 규칙적인 30분 걷기를 목표로 시작한 운동이 1시간까지 빠르진 않지만 천천히 뛸 수 있게 되면서도 마라톤 완주를 희망하거나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 사전에 마라톤이란 단어는 없고 꿈도 꿔 본 적 없다. 그런데 그 꿈이 그렇게 송년회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그날 이후 마라톤 완주에 필요한 정보와 책을 찾아보고 준비과정을 소개한 마라톤 관련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정말 뛰어볼까?”



나는 체육대학을 나왔다. 체육대학만 나온 게 아니라 직장 생활도 운동을 가르치는 일로 시작했고, 박사학위까지 받고 지금은 대학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곧잘 했다. 그런데, 자주 다쳤다. 특히 무릎은 종종 문제가 있었다. 군복무 때도 심하게 고생했고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오래 서 있거나 운동을 심하게 한 날은 여지없이 무릎이 아팠다. 심할 때는 무릎을 거의 구부리지 못했고 많이 부었다. 가끔은 물이 차올라 병원에서 큼직한 주사기로 빼내야 했다.


가장 심각했을 때는 2014년이다. 이 해에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있었다. 당시 체육단체에서 근무를 했고 대한민국 대표팀 의무담당자로 참가했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을 도왔다. 종일 많은 시간을 경기장과 선수촌을 누비며 서서 보냈다. 선수촌에 입촌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무릎 통증이 시작됐다. 오랜 시간 서서 보낸 것이 문제였다. 다리를 전혀 구부리지도 안지도 못할 정도로 무릎 주변이 퉁퉁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해졌다. 같이 일하던 대표팀 팀닥터가 무릎에서 물을 빼면 나아질 거라고 해서 주사기 2개 분량의 누런 물을 빼냈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었고 빠졌던 붓기는 몇 시간 만에 다시 차 올랐다. 서있는 시간을 줄이고 쉬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부상당한 선수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에서 안 그래도 부족한 치료실 공간을 내가 차지할 순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한 인천아시안 게임은 아픈 무릎 때문에 고생을 한 기억이 금메달 현장에서 느꼈던 현장 애국가의 감동보다 더 강하게 남아있다.


나는 스포츠의학을 전공했고 가르치고 선수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다른 어느 부위보다 무릎은 부상이 많은 곳이다. 대부분 스포츠는 다리를 사용하고 또 부상도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위이다. 무릎뿐 아니라 운동하다 발생하는 부상은 초기에 의학적인 관리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후 관절을 조금씩 움직이며 근력을 붙이는 순서로 재활이 진행된다. 무릎은 앞 허벅지의 근육이 튼튼하면 좋다.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내 무릎은 관리하지 못했다. 무릎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법과 요령을 알지만, 내 무릎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부상 때문에 운동을 못하는 훈장 단 체육인 코스프레를 했다. 부상으로 은퇴해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는 선수처럼 행동했고 인천 아시안게임 후에는 더더욱 운동을 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2014년 가을 이후 나는 완전히 운동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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