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Mar 11. 2020

기적 같은 암 치유.

임사체험.

다음 브런치에서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대장암 말기로 수술도 못해서 시골에서 요양하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를 당해서 대장이 파열되면서  암이 온몸으로 퍼져 오장 육부중 위장 췌장 비장 대장을  다 잘라내고 2년째 아직 잘 살고 있는 분이다. 기적이 일어나 암이 완치되기를 바랐지만 장기를 다 잘라내고 남은 생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건강해질 수 있었느냐고 묻지만  그는 그저 담담했다. 종교적인 행위 자체를 싫어하는 그는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병을 모른 척하고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신빨로 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실제  그의 투병 중 생활습관을 보면 세상이 정한 병의 치유 매뉴얼에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다.  수술 중에도 그는 담배를 피웠으며 , 커피를 달고 살았고, 아이스크림을  즐겨먹었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야채 위주의 식사와도 거리가 멀었고, 잠도 이삼일에 한번 서너 시간씩만 잤고. 운동 따위는 하지 않았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곤 했다. 그는 그러면서 딱한 마디 한다. 그저 마음 편한 대로 먹고 싶은걸 먹고 내가 하고픈 걸 하고 병에 지 않는 거.... 그게 그의 신조이고 생활습관이었다. 그건 그랬다. 그는 항암 도시락을 배에 차고서도 신경 쓰지 않고 지인들과 차를 마시러  나 온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알게 된 책이  한 권 있다. 임사체험을 한 후 암이 완치된 아니타ㅡ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이다.


암의 치유에 기적 같은 건 없다.
 이 책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인간 본연의 숭고한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자신의 존재 상태  각자 믿고 싶은 자신의 모습인지 모른다.  명상을 하고 마음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이 신비스러운 이야기에 매료되었지만, 인간의 이성은 늘 언제나 합리적인 생각의 토대를 근거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 영적인 이야기들의 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철학적 논리로 다가갈 수는 없다. 그만큼 영적인 세계는 이성도 아닌 감성도 아닌 체험적인 모호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나에게 그 틀이 조금씩 깨어지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에 빠지고 나서이다.

과학이라는 절대 논리를 증명하는 학문에서 이 영성이라는 신비로운 현상이 과학으로 증명이 되고 수학적 공식으로 풀어져나가는 걸 보면서 마음이 만들어내는 현상들에
양자역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지만,
양자들의 기본 움직임은 마치 마음과 동일하게 운동하고 있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입자들이 서로 만나 힘을 받으면  전자들이 운동을 한다. 양자역학의 특성인 얽힘과 중첩 , 양자역학 속 입자와 파동의 움직임.
두 파동이 맞으면 비슷한 사람이 만나 마음은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양자역학을 좀 더 넓고 철학적으로 풀이한 교수는 인간이 우주를 무한하다고 믿으면 실제로 무한할 것이고  유한하다고 믿으면 우주에도 한계가 생긴다. 고 한다.  
사랑이든 일이든 물건이든 관념이든 종교든 예술이든 감정이든 자기 자신이든 대상을 분명히 인지하고 애정을 가지면 그 대상은 무한해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의 저자는 30대에 말기암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 30시간을 죽어있었고, 그 죽음의 시간 동안 자신의 무안한 사랑과 스스로의 숭고함을 인식했다고 한다.
남들의 시선을 맞추면서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우리들!
나는 나를 얼마나 인식하고
스스로를 얼마나 새롭게 창조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물질 , 나, 우리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 속 전자들의 움직임 속에서
전자의 원래 특성은 파동의 형태를 띠고 중첩되고 얽히어져 불안정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우리가 관측하는 순간
전자는  입자가 되어 일정한 모양의 무늬를 만들어 낸다.
마치 어느 시인의 시처럼
"네가 나의 이름을 줄러 주었을 때 나는  너의 꽃이 되었다."는 말처럼....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하기 전까지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물이나 관념을 인지하기 전까진 그것들이 여러 형태로 존재하거나 어쩌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 또한 내 것이지만  나라는 숭고한 존재를 인식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는 그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어느 조직의 누군가로만 존재한다.
나의 순수성을 모른 체 우리는 단지 그 누군가의 무엇으로만 맞추어가면서 평생 살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타 무르자니가 그녀의 책에서 임사체험의 상태를 서술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단 한순간이라도 나라는 자유로움 속에서 가벼워짐을 느낀 순간이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죽었다. 의식이 더 멀리 확장되어 갈수록 내가 이경 의로운 상태에 있다는 사실에 더 익숙해져 갔다.
내가 물리적 환경에서 떨어져 나와  계속해서 멀리 더 멀리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계속 넓어져서 훨씬 더 깊은 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이것은 기쁨에 더해 환희와 행복감이 무한히 솟아오르는 감정이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병들고 죽어가는 내 몸에서 풀려났다는 기쁨 병 이준 그 모든 고통에서 풀려났다는 환희에 넘치는 해방감이었다.
이 다른 세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바깥쪽으로  더 넓어가면서 모두이자 모든 것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변 환경에 대한 감정적 집착이 점점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오로지 장대하고 영광스러운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계속 모든 걸 놓아가는 동안 나를 감싸주었다.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말은 사실 이 느낌을 결코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이 표현은 너무 남용되어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끌어왔던 육체와의 싸움이 마침내 나를 거머쥔 손아귀를 풀었고 그렇게 나는 이 아름다운 자유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물리적으로 어디 다른 데로 갔다는 느낌이 아니었고  내가 깨어났다. 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아마도 악몽에서 마침내 깨어난 것이리라. 내 모습은 마침내 자신의 장엄한 진짜 모습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영혼은 이 몸과 물리적 세상을 넘어 멀리 확장해 나아갔다. 영혼은 바깥으로 더 멀리 더 멀리 확장해 나아갔다.
사랑과 기쁨 황홀경 경이감이 내 안으로 나를 뚫고 쏟아져 들어왔고 나는 그 안에 잠겨버렸다. 가히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랑에 집어삼켜지고 둘러싸였다.
그어 느때보다도 자유로웠고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완전하고 순전하며 조건 없는 사랑의 느낌 절대적 사랑의 느낌이었다.
바로 존재의 상태였다.
신이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라는 깨달음이 왔다.
P112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중에서......
아니타 무르자니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욕망을 책임지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