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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Nov 14. 2020

돈. 노력 시간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

디올

실화속  꽁트

돈과 노력과 시간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


요즘 제법 입소문이 나서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는 지인의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오랜만의 저녁 외출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공들여 화장을 하고 옷과 액세서리까지
깔맞춤 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거울을 바라본 내 모습은
꽃처럼 화사했다. 얼마 전 백화점에서 산 고가의 원피스는 역시  핏이 살아있었고 화사했다.
짝퉁이긴 해도 제법 명품처럼 보이는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구두가 문제였다.
정장에 맞는 신발이 없었다.
평소 편한 신발을 즐겨 신다 보니 굽 높은  구두 산지가 오래되었다.
  어쩔 수 없이 거금을 들여 샀지만  지금은 유행이 지나 신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먼지가 뿌옇게 앉은 구두를 대충 닦아서 신고 나왔다.
이  구두는 히스토리가 있다.
오랜 전 서래마을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할 때
명품 중고샵에서 산 크리스천 디올 구두였다.
너무 이뻐서  굽 있는 신발을 신지 않았음에도 중고라고 해도 고가를 주고 덥석 샀지만 불편해서  몇 번 신지도 않았는데  세월이 흐르고 신발 색도 변하고  후줄근 해졌다.
옥에 티라고 했던가! 거울 속 샤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한 구두만 계속 신경 쓰이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출근 후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모두 눈이 휘동 그래 져서 오늘 예쁘다는 찬사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면서 구두 생각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평소에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대충 하고 다닌 탓에  정장 차림의 복장도 불편하고
화장실 갈 때마다 찐한 화장의  내가. 어색했다.
역시나 공들인 시간과 돈.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묵묵히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한번 더 쳐다보는 이 느낌적인 느낌은
모든 인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왔다.
쭈구리처럼 대충 걸치고 컴퓨터 앞에 코 박고 일만 했던 내가
패션쇼라도 하듯 사무실 구석구석을 활보하고 다녔다.
오늘 내가 들인 시간과 돈 노력을  타인들의 시선으로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오늘 나의 하루는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김진애 차장이 오늘따라 안 보인다.
일단 그녀에게 내 오늘  하루 동안의 변신을 보여 주고 콧대를 좀 꺾어주어야 했다.
화장은 왜 안 하느냐며 조금만 신경 쓰면 멋질 텐데 라며 여자로서 벌써 포기하면 안 된다며  그녀는 평소
언제나 나를 빈정대는 눈길로 온몸을 스캔했다.
김진애 차장.
안하무인에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그녀의 별명은 욕받이이다.
워낙 말을 재수 없게 쏟아내지만
그녀와 엮이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만 하면 업무상 지내는데 별 탈이 없었다.
사장이 악역 담당할 인물로 그녀를 채용했다는 후문이 있을 만큼 사람들은 그녀를 싫어했지만.
든든한 사장 백을 믿고 도를 넘는 행동과 언행으로 눈살 찌푸리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본래 성격은 여리디 여린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 회사 패션니스트이다.
미인은 아니지만 몸매가 받쳐주었기에 매일매일이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여자였다.
화장은 또 얼마나 짙었는지... 도대체 저런 옷들을 어디서 사는 거지.  단 하루도 같은 옷이 없었다.
그녀를 보면
우리들은 늘 질문들을 꼬리표처럼 달았다.
아! 저 옷은 얼마일까?
저렇게  화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일까?
한 달에 옷 사는데 드는 돈은 얼마일까?
친구는 있을까?
막말하는 자신을 모두 싫어한다는 걸 알기나 할까?
자신이 공감력 제로라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점심을 먹고 화장실 앞에서 김진애 차장을 드디어 만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심하게 인사를  하며 일 이야기를 꺼냈다.
김 차장 미팅이 언제라고?
김 차장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나는 조금 거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자기 무슨 일 있어 뭔 일이래?
그녀는  내신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니 신발은 보는 게 아니지...
옷을 보라고 화장을 보라고...
 이 여자!
귀신같이 언밸런스인 신발을 알아차리는군."
오늘 결혼식에라도 가는 거야?
(곧 죽어도 이쁘단 얘긴 안 하는군...)
"무슨 그냥 기분전환 좀 했지!"
얻른 사무실로 발길을 옮기는 내게 그녀가 말한다.
"음.... 근데 이 신발 말이야! 디자인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음 브랜드는  클래식한 느낌이 모두 비슷비슷하지 뭐!
내가 대꾸하자. 김진애는  한마디 내뱉는다.
"아!  기억났다. 몇 년 전에 내가  내다 버린 구두야!  디자인이 똑같아.
"헉! 역시 나쁜 년이다."
신발이 다 거기서 거기지.... 무슨 같은 신발이라고 우기나!  
 립서비스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재는 뿌리지 말아야 할게 아닌가!
내가 이 여자한테
뭘 바랬던가!......
그때 김진애 차장이
다정하게  한마디를  더 한다.
자기 나랑 비슷한 취향인데.....
내가 좋아했던 브랜드였어.
한때 이구 두만 신고 다녔어.
구두 보는 안목이 있다니까.
자기 다시 봤어.


헉 이건 또 뭔가!
병 주고 약주나!
자리로 돌아와
구두를 물끄러미 보았다.
한 가지 의문은 풀렸다.
그녀는 백만 원이 넘는 명품 구두를
신고 다니는  여자다.!
돈과 시간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그녀의 껍데기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하지만  외면당하는
그녀의  내면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배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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