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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Feb 14. 2021

천사 미리내 2편

소설

illustration by
현현 (이정석)


여자의  몸속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은 지상에서의  최상의 시간이다.

지금 내가  입주하고  있는  여자의 나이는 마흔셋.
이름은 김미화. 과거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가였었다.

그녀의 몸 안에 있는 동안 한 번도 그녀가 연주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지만 ,
그녀의 기억은 비참할 정도로 연습에 만 매달려 온 시간이  선명함을 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한강변에서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자전거를 타다가
" 당신이랑 이렇게 하루 종일 놀면 너무 좋은데.... 난 말이야 세상의 재미들을 다 알면  첼로를 못할 거 같아. 연습을 하루만 게을리 해도 첼로는 소리가 후져버리거든.
근데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잖아!"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기억이
서글픔이라는 감정으로 함께 느껴졌다.


천사들은 감정을 느낄 줄 모른다. 단지 인간의 감정 안에서 그 느낌을 공유할 뿐.
나도 과거에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을 텐데. 천사는  단지 몸을 거쳐 온 사람들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기억 속에서만 산다.   어쩌면 이 여자의 인생만큼 나도 슬픈 인생 인지 모른다.

500년을 프랑스인들의 몸속에서 살았다.
이곳에서는
아무런 사건 사고가 없이 늘 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김미화의 단조로운 일상에는 음악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이 없던 지난 시간의 기억은  회색도시처럼 어두 었다.
그녀는 식료품도 모두 택배로 주문하고
타인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그녀는 침묵을 경청했다.
그럴 때면
 프랑스인들의 끝없는 수다가 그립기도 했다.
시끄럽고 지나친 자기 과시와 성에 대한 집착으로
고민하는 프랑스인들의  영혼 안에서
가끔은 피곤하고 외롭기도 했다. 인간들의 쾌락과 즐거움은 천사인 나에게는
허무로 다가오곤 한다. 프랑스인들은 논쟁을 좋아해서 많은 사유를 하지만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의 끝없는  식탐과 쾌락  욕구는
삶을 지치게 만들었다..  먹고  마시고 수다 떨고 섹스하기 바쁜 그들의 열정적인 삶은
시대가 바뀌어도 늘 같은 반복이었다.
그들은 신적인 어떤 영감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할 뿐이다.

그에 비해 한국인들은 조용하고  영적인 욕구가 강하다.
자기 독 백안에는 늘 영적인 에너지를 갈구한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도
나와 교감하는 시간이 많다. 김미화는 자기 독백이 많은 여자이다.

아이를 가지지 않은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녀의 남편은 바이올린 제작 공방을 하고 있었다.
둘은 이태리 유학 중에 만나 결혼을 했다.
사고가 난 그 날은 15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비가 왔다.
그녀는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그녀의 공연을 유튜브로 보고 있었다.
"이날 드레스는 좀 너무 꽉 껴보여.  옆구리 살이 흉측해! "그녀가 심각한 말투로 중얼거리자.
남편이 운전하다 말고 동영상을 곁눈질로 보았다.
"무슨 소리야 뼈밖어 안 보이는 구만"
기정은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아주 잠깐 이었다.
그때  앞차가 가드레일을 받고  튕기는 사고가 났고  동영상을 보고 있던 남편은  피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그녀는 멀쩡하게 살아남았고
그녀의 눈앞에서 남편이 즉사했다.


그녀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으로 6개월의 시간을 폐인으로 보냈다.
"내가 그때 동영상을 보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그 차는 피할 수 있었는데....
김미화는 그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6개월 뒤 자살을 시도했었다.

다행히 그녀는
병원에서 깨어났고 그때 나는 이 여자의 몸에 이주했다.

"언니 난 도저히 눈뜨고 하루를 보낼 수가 없어 세상에 온통 기정 씨의 추억밖에 없어"
그녀는 언니를 붙들고 울기만 했다.

김미화의 몸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라고는 그녀의 기억을 미친 듯이 지우는 일이 전부였다.
그녀의 영혼을 붙들기 위해 매일 대화를 하고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조금이라도 기억이 옅여 지게 하기  위해 그녀의 영혼을 붙들고
매일 밤 기억들을 지웠지만 그녀의 의지는 그다음 날 또 새로운 기억에 집착해서 다시 기억을 리셋했다. 천사들의 한계는 여기에 있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저항하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에 순응하는 인간들은 천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다.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저항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우리 천사들이 다
알아서 하는데  끊임없이 생각거리를 리셋하는 인간들의 기억 때문에 천사들은
늘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보통의 경우 천사는 어린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인간의 영혼과 평생을 함께 한다.
하지만 김미화의, 경우처럼. 중간에 천사가 바뀌는 일도 종종 생기곤 한다.
이런 경우 천사들은 인간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똥 밟았다 라고 한다.
정상이 아닌 영혼을 수습하는 뒤처리는 늘 힘든 과정 중 하나였다.

인간들의 주파수는 어쩌면 자신에게 맞는 천사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이 여자는  정신줄을 놓은 상태에서도 어떤 새로운
영혼을 원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프랑스에서  70년을 함께 한 인간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고 휴가를 즐기고 있던 차였다.

이 여자가 천사를 바꾸게 된 원인은 다양하지만 어쩌면 간절한 이 여자의 염원이었지도 모른다.
천사 루피나는 원래 이 여자의 몸속에 있던 전직 천사였는데....
루피나의 영적인 교감을 이 여자가 거부하면서부터 루피나는 이 여자의 몸의 영주권을 잃어버렸다.
루피나는 너무나 변해버린 이 여자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여자의  생명 시계는 몇십 년이 더 남았지만.  루피나와 여자의 영혼은 서로 어긋나서
결국 루피나는 불명예 영혼이탈 상태로 이 여자에게서 추방당했다.

루피나는 평생을 함께 해 온 여자의 영혼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녀를 자살이라는 절벽까지 내 몬 책임을 깨닫고  나에게 영혼을 인수하는 절차를 순조롭게 해 주었다.

우리 천사들에게도 저마다의 능력의 편차가 있어서 인간들의 구원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천국의 카드를 받게 된 천사들이 결국은 많은 직위와 상벌이 따른다.
대천사 미카엘의 업적은 천사들 사이에도 우러러볼 정도이다.

"기정 씨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
병원을 퇴원하고 어두운 밤마다 그녀는 독백 같은  질문을 했다.
슬픔은 덜어 낼 것이 아니라 더 넘치게 흘러내리게 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다. 김미화는 자신의 슬픔 안에 남편에 대한 죄책감의 불순물을 눈치 채지 못했다.
"어제는 당신 물건들을 다 처분했어. 바이올린을  기부하면서
내 거도 같이 줘 버렸어. 나 이제 첼로 연주 같은 거 못 할 거 같아."
김미화가 잠들지 못하는 밤!
내가 무엇을 할까!

"당신이 이런다고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내가 속삭였다.

"보고 싶어, 만지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그녀가 대답했다.

긴 밤을 하얕게 지새우고
김미화는 다음날  서울을  떠날 채비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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