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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Nov 22. 2020

지루해진 관계

변화

2년 전 일기장에서  만난 글을 아침에 퇴고해 본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면서
또 한편에는 변화하지 않는 것들에
실망한다.
지금 변화된 나는 어떤 모습인가 생각에 잠긴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란 영화를 보고 한때
불륜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그 견해를 좁히지 못하고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친구가 있었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서
"그래 봐야 불륜이잖아"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불륜도 사랑이야
"결혼 제도가 그나마 이만큼  유지되는 이유가 뭔지 아니? 그건 바로 불륜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내가 반문했다.
그녀는  불륜에 딱 한 단어로 정의했었다.
"가정을 파과 하는 범죄행위."
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인간의 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보수적이며 의롭고 정의로우며  정답을 가지고 사는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런 그녀를 존중하기에 반론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대화거리로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세계가 변해버렸다.
서로의 다름을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정답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그녀의 견해를 알면서도 발끈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서 그녀를 자극한 건 순전히 의도적인 거였다.
이런 대화의 갈등은 그녀와의 관계의 변화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불륜이 가정을 파괴하는 범죄행위라면 그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가 무엇이며 우리는 왜 범죄인지 알면서도 그 행위 속으로 빠지는지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해 대화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어떤 이야기라도   "좋다 "  "나쁘다 "라는 답 속에 넣어 시시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그녀는 반듯했다.  천지가 개벽해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동아줄 같은 사람이었다. 늘 감성적인 나와 다르게 이성적인 그녀였다. 해바라기처럼 단단한 그녀에게 붙어서
나필꽃처럼  그녀를 타고 올라가  그녀에게 의지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흔들리지 않는 그녀가  이제는 부담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고와 견해가 다를 때   타인을 배척하고 냉정 해지는 그녀가 지루해졌다.
나의 반론을 대화의 소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반감으로 받아들이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늘 긍정 모드로 들어주던   내가 언제부턴가가 조목조목  반대되는 생각들을 꺼내어  나열하자 그녀 또한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몇십 년을 잘 지내와 놓고서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만 들쑤시고 있는가!  그녀를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존중하고 빋아들이면서  지내도 충분했었다.
그녀와 누릴 것만 누리면 충분했었다.
그리고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나의 욕망을 숨기고 그녀를 대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서 투명해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많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들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
그녀는 늘 그렇게 당연한 것들을 당연한 시각으로만 바라본다.
당연히 불륜은 저질러서는 안 된다.
누가 내 가정이 파괴되는 걸 원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견고하게 하고 그 견고 함이 너그러움과 여유로 안착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자기 성찰을 하고  예술작품을 만들고 감상한다.
또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한다.
좀 더 다른 시각 좀 더 다른 형태의 인간의 모습. 그러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거나 이질감이 들 때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고 직면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해피앤딩인 영화만 보고 싶고 보편타당한 이야기만 즐기고 싶다.
하지만 직면해야 할 부정적인 사고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한 성숙된 사고를 해야 한다.
불륜을 다룬 영화도 그 당연하지 않은 측면이고 불편한 감정이  들게 하는 측면이 예술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미화된 불륜을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인간성을 공감하면서 선과 악의 관념에서 열린 마음을 갖게 되면 그들의 행위가  아닌 마음속으로 들어가 공감하게 되고,
결국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불편한 마음을 주는 것들과 직면하고 바라봐야 할 수밖에 없다.  내 사랑이 지고지순하다면  나의 이 하나뿐인 당연한 사랑을 당연함이   아니라 자유롭게 바라보면서 집착과 욕심을 덜어내고 사랑 자체만으로
배우자를 사랑하는 법을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타인들의 금지된 사랑도 관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타인을 비난해서
내 것을 지킬게 아니라.
타인을 공감하면서
내 것을 지키는 것들에
가까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한다는 건 이런 관대한 마음을 가지기 위한 훈련이다.


그녀를 만나면 나는 관대해져야 한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면 지루하다.
정답을 가지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사람.
지적질을 하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은
싫은 사람이 아니라
지루한 사람이다. 지루함이 때론
싫은 것보다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과
대화하면서
물고 뜯고 싸워보고 싶다.
해묵은 관계를
서랍 속에 넣고
또 새로운 변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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